합법적으로 벌목하는 가장 간편한 수단
큰일났다.
설비가 위치한 지사 울타리 근처에 있는 산에서 산불이 났다(2022.4.27). 상황을 보아하니 꽤나 심각하다. 여차하면 인근 민가를 덮치고 우리 설비 근처까지 타고 내려 올 기세다. 벌써 내가 살고 있는 지사 내 사택 근처까지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닥쳐온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지경이 되면 당연히 소방차가 몽땅 출동하고 소방헬기가 뜨며, 공무원 및 군인 비상령이 내려서 산불을 끈다고 난리일 텐데, 이 나라에선 아무도 불 끄는 사람이 안 보인다.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환경담당 매니저한테 자세한 경과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는데... 답변이 충격적이다. 고의산불이라는거다. 그래서 아무도 불을 끌 생각을 안 하는 거란다. 우리 직원들이라도 동원해서 불 끄러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다들 조심스럽게 말린다.
내가 살고 있는 지사 현장은 국립공원 내 위치한 특별한 곳이다. 당국의 허가증이 없으면 물고기 한 마리 함부로 낚지 못하고 당연히 나무도 자를 수 없다.
그런데, 이 나라 서민들, 에너지를 구할 수 있을 만큼 잘 살지 못한다. 최저임금이 채 30여 만원도 안 되는 데다 그나마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직장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삶인데 전기요금은 우리나라보다도 비싸며 기름도 어차피 수입하는 나라라 매한가지로 비싸다. LNG-파이프 도시가스는 보급될 꿈도 못 꾸며(직관적 판단으로 도시가스가 보급되려면 최소 50년은 더 걸릴 것 같다.) 통에 넣어 배달하는 LPG도 당연히 비싸다. 그럼, 전기 인덕션도 가스레인지도 기름 곤로도 못 쓰면 대체 밥은 어떻게 해 먹나? 그러게.... 장작불밖에는 대책이 없다.
그럼, 산에 나무라도 빽빽하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다. 이건 뭐 마치 돌산을 겨우 면한 곰보빵에 이쑤시개 꽂듯 듬성듬성 난 모습이 일반적인 산의 모습이다. 그것도 그나마 복구된 게 그 정도란다.
정부도 나무 자원의 중요성을 아는지, 산림의 나무를 허가 없이 훼손하는 일은 엄격히 통제한다. 단, 예외가 있는데, 산불이 나서 손상되거나 죽은 나무를 벌목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주민들은 이 점을 노리고 곧잘 고의산불을 낸다고 한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대기질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 정비를 한 건지 만 건지 검은 매연을 폴폴 내뿜으며 달리는 족히 30여 년은 된 듯한 자동차도 지천이며, 쓰레기는 대충 모아다 공터에 불 질러 버리고 발전소, 공장 등의 배기가스 배출기준은 느슨한 데다 주민 밀집구역에서도 청정연료가 아닌 화석연료를 마구 써 대는데, 지리적으로 북쪽으로 갈수록 히말라야 산맥 지형이라 공기 순환도 잘 안 되는 문제로 때때로 대도시에선 스모그로 인한 외출금지령이 내릴 정도로 대기환경이 열악하다. 내가 사는 이곳은 시골지역이라 대도시에 비해선 좀 낫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기가 상쾌하다고 느끼는 날은 연중 손에 꼽을 정도로 여기도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72805&ref=A
산에 나무라도 많아야 나뭇잎 기공에서 먼지를 흡수하고 흡착하여 공기를 정화할 텐데 그나마 조금 있는 나무도 매번 저렇게 고의산불로 몽땅 싹을 잘라버리니 큰일이다. 그렇다고 또 나무까지 못 해가게 하면 이곳에 사는 밑바닥 서민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대책도 없다.
한국은 단기간에 산림 식목을 너무너무 잘해서 요즘에는 너무 빽빽한 수목 밀도 때문에 강제 벌목을 한다는데 정말 너무 많은 게 비교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헐벗고 굶주리던 옛날에 그나마 없던 나무까지 베어가며 살아가던 그 시절이 불과 몇십 년 전이라는 거 잊지 말자.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시골엔 민둥산이 많았고 정부에서 고용한 벌목감시원이 있던 시절이었다.(아, 이러고 보니 너무 고인물 티가 난다.)
산불은 밤 새 활활 타오르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행히 자연 진화되어 있었다. 나무가 듬성듬성 있다 보니 광역 산불로 번지지 않은 건 그나마 위안이었다.
좀 다 같이 다 잘 살면 안 될까? 한국도 파키스탄도 우크라이나도 나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