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y 18. 2022

이건 아니잖아. 고의산불

합법적으로 벌목하는 가장 간편한 수단

 큰일났다.



 설비가 위치한 지사 울타리 근처에 있는 산에서 산불이 났다(2022.4.27). 상황을 보아하니 꽤나 심각하다. 여차하면 인근 민가를 덮치고 우리 설비 근처까지 타고 내려 올 기세다. 벌써 내가 살고 있는 지사 내 사택 근처까지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닥쳐온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지경이 되면 당연히 소방차가 몽땅 출동하고 소방헬기가 뜨며, 공무원 및 군인 비상령이 내려서 산불을 끈다고 난리일 텐데, 이 나라에선 아무도 불 끄는 사람이 안 보인다.


 비상회의를 소집하고 환경담당 매니저한테 자세한 경과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는데... 답변이 충격적이다. 고의산불이라는거다. 그래서 아무도 불을 끌 생각을 안 하는 거란다. 우리 직원들이라도 동원해서 불 끄러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다들 조심스럽게 말린다.


"사람들이 이기적 욕심으로 산불을 내고 야생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있어요."


 내가 살고 있는 지사 현장은 국립공원 내 위치한 특별한 곳이다. 당국의 허가증이 없으면 물고기 한 마리 함부로 낚지 못하고 당연히 나무도 자를 수 없다.


 그런데, 이 나라 서민들, 에너지를 구할 수 있을 만큼 잘 살지 못한다. 최저임금이 채 30여 만원도 안 되는 데다 그나마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직장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삶인데 전기요금은 우리나라보다도 비싸며 기름도 어차피 수입하는 나라라 매한가지로 비싸다. LNG-파이프 도시가스는 보급될 꿈도 못 꾸며(직관적 판단으로 도시가스가 보급되려면 최소 50년은 더 걸릴 것 같다.) 통에 넣어 배달하는 LPG도 당연히 비싸다. 그럼, 전기 인덕션도 가스레인지도 기름 곤로도 못 쓰면 대체 밥은 어떻게 해 먹나? 그러게.... 장작불밖에는 대책이 없다.


 그럼, 산에 나무라도 빽빽하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다. 이건 뭐 마치 돌산을 겨우 면한 곰보빵에 이쑤시개 꽂듯 듬성듬성 난 모습이 일반적인 산의 모습이다. 그것도 그나마 복구된 게 그 정도란다.


산이면 당연히 나무가 빽빽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히 아닐 수도 있다.


 정부도 나무 자원의 중요성을 아는지, 산림의 나무를 허가 없이 훼손하는 일은 엄격히 통제한다. 단, 예외가 있는데, 산불이 나서 손상되거나 죽은 나무를 벌목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주민들은 이 점을 노리고 곧잘 고의산불을 낸다고 한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대기질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 정비를 한 건지 만 건지 검은 매연을 폴폴 내뿜으며 달리는 족히 30여 년은 된 듯한 자동차도 지천이며, 쓰레기는 대충 모아다 공터에 불 질러 버리고 발전소, 공장 등의 배기가스 배출기준은 느슨한 데다 주민 밀집구역에서도 청정연료가 아닌 화석연료를 마구 써 대는데, 지리적으로 북쪽으로 갈수록 히말라야 산맥 지형이라 공기 순환도 잘 안 되는 문제로 때때로 대도시에선 스모그로 인한 외출금지령이 내릴 정도로 대기환경이 열악하다. 내가 사는 이곳은 시골지역이라 대도시에 비해선 좀 낫긴 하지만, 그렇다고 공기가 상쾌하다고 느끼는 날은 연중 손에 꼽을 정도로 여기도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72805&ref=A


 산에 나무라도 많아야 나뭇잎 기공에서 먼지를 흡수하고 흡착하여 공기를 정화할 텐데 그나마 조금 있는 나무도 매번 저렇게 고의산불로 몽땅 싹을 잘라버리니 큰일이다. 그렇다고 또 나무까지 못 해가게 하면 이곳에 사는 밑바닥 서민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대책도 없다.


 한국은 단기간에 산림 식목을 너무너무 잘해서 요즘에는 너무 빽빽한 수목 밀도 때문에 강제 벌목을 한다는데 정말 너무 많은 게 비교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헐벗고 굶주리던 옛날에 그나마 없던 나무까지 베어가며 살아가던 그 시절이 불과 몇십 년 전이라는 거 잊지 말자.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시골엔 민둥산이 많았고 정부에서 고용한 벌목감시원이 있던 시절이었다.(아, 이러고 보니 너무 고인물 티가 난다.)


 산불은 밤 새 활활 타오르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행히 자연 진화되어 있었다. 나무가 듬성듬성 있다 보니 광역 산불로 번지지 않은 건 그나마 위안이었다.


 좀 다 같이 다 잘 살면 안 될까? 한국도 파키스탄도 우크라이나도 나무도.

이전 10화 22년 5월 말, 지금 파키스탄에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