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농산물이 싸지만, 유달리(특정 작가님의 이름은 아님) 수박이 싼 나라 파키스탄.
혼자 사는 탓에, 한 통을 사면 늘 다 못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사야 하는데, 센터로스 알파타 마트에서 오늘 산 수박은 1,700원짜리 중짜 되시겠다. 특대짜는 아니고 6~7kg급은 되어 보인다. 없어보이게 수박을 낑낑대고 들고 오느니 그냥 배달을 시킬까 하며 푸드판다 앱(파키스탄식 배달의 민족이라 보면 됨.)을 열어보고 검색을 미리 해봤었지만, 무게만 무겁고 가격은 싼 까닭인지 망고는 배달해주는데 수박은 배달을 안 한다.
어쨌든 1주일 내내 수고한 나를 위한 선물을 사는 셈 치고, 밥은 안 먹어도 수박 먼저 먹고 배 채워야지 하면서 야심차게 사 와서 몇 시간 냉장고에서 식혀서 딱~ 배를 가르는데...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속살의 감촉이 느껴지며, 도마 밑으로 흥건한 붉은 물이 촤~악~ 흘러넘친다.
"응? 이 느낌이 아닌데???"
흘러넘치는 물을 적당히 싱크대에 흘려보내고 반으로 딱 갈랐는데... 세상에... 이 그로테스크한 작태를 보라.
아니 이래서 며칠 전 @그린제이 작가님이 고흐를 떠올리셨나? 빈센트 반 고흐 작품 "별이 빛나는 밤"도 생각이 나고...
적당히 긁어먹다가 아무래도 찜찜한 생각이 들어서 똑똑이 누나한테 카톡으로 국제 식이상담을 받으니 당장 갖다 버리라고... 이미 긁어먹었다고는 차마 얘기를 못하겠고, 혹시나 탈 날까 싶어 구충제를 한 알 날름 삼켰다.(식중독과 구충제 별로 상관없다는 것 알고 있지만 심적 위안은 충분히 된다.)
따 둔지 오래돼서 퍼석퍼석한 수박은 봤는데, 이렇게 완벽히 농해버린 수박은 처음 본다. 최고 온도가 40도 넘어간지는 벌써 한참이 되었는데, 물류는 엉망이고, 거기다 수시로 정전이 되는 나라이니, 열어보기 전에 확인할 길이 없는 과일은 가끔 좀 상할수도 있지. 이해는 된다.
어쨌든 한국 같으면 당장 들고 가서 환불해 오겠구만(비싸니까), 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수박을 들고 가서 바꾸기도 모양 빠지고, 들고 가는 노력 기회 비용이 환불받는 비용보다 더 큰 것 같아서 아깝지만 깔끔하게 포기. 덕분에 브런치 글감은 건졌으니, 돈 주고 글감을 샀다고 생각하자.(빠른 자기 합리화)
아까 살살 긁어먹은 수박이 걱정도 되고, 상한 수박을 검색해보니 무서운 글들이 촤라락 뜬다.
내가 본 회오리 모양의 상한 속살은 전형적인 "수박 모자이크 병" 증상인데, 식물 바이러스로 기인한 거라 사람에게는 큰 작용을 안 한다고는 되어있지만, 2차 세균 감염이 된 상태라면 얼마든지 배탈을 일으킬 수 있으니 아까워 말고 버리라는 내용이 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