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젓가락 부대로!
'이제 저 문을 통해 들어가면 나의 군 생활은 시작이다.'
97년 9월, 서울은 쾌청한 가을날씨였다. 하지만 그곳(강원도 춘천)은 여름이었다.
내가 입소할 당시에 신병들은 서울에 집을 두고 있는 자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 출신이라는 덕분에
'뺀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102 보충대에서 보급품을 지급받고,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2년 2개월을 보내게 될 사단을 배정받는다. 102 보충대에서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부대는 36사단이었다. 36사단은 유일하게 전투부대가 아니었다. 이미 신병들은 어디가 좋은지 금세 알 수 있었다.
102 보충대에서도 살아남을 기회가 있었다. 중간중간 방송으로 "사회에서 요리를 해본 병사는 국기게양대 앞으로 나오기 바란다." 나는 해당이 없다. "사회에서 태권도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병사는 국기게양대 앞으로 나오기 바란다." 이것도 해당 없다. "사회에서 컴퓨터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병사는 국기게양대 앞으로 나오기 바란다." 이것도 크게 상관이 없지만, 살기 위해 국기게양대로 튀어 갔다.
국기게양대 앞에 모인 병사들은 특기대로 나눠서 줄을 섰다. 우리 줄로 작은 키에 두꺼운 안경을 쓴 컴퓨터 잘하게 생긴 선임이 와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물었다.
"넌 컴퓨터로 어떤 프로그램을 짜 봤냐?"
우물쭈물하거나 대답을 하지 못한 병사는 빠르게 막사로 돌아갔다. 선임은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와서 같은 질문을 뱉었다. 나는 이것저것 주워들은 단어를 나열했다.
"전 코볼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C언어를 활용해서 교수님을 도왔습니다."
그렇게 자웅을 가릴 수 없는 5인이 살아남았다. 옆에서 듣기에도 대단해 보였다. 선임은 우리를 행정실로 데려갔다.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시험지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두 문제를 칠판에 적었다. 이어서 우리에게 문제에 맞는 프로그램을 설계해 보라고 했다. '아!' 당연히 탈락했다. 살아남지 못했다.
102 보충대 마지막 날 저녁, 공정한 사단 배정을 보여 준다면서 TV로 생중계를 했다. 모두가 긴장하면서 TV를 시청했다. 발표와 동시에 탄신과 기쁨이 공존했다. 당연히 36사단에 배정받은 소수 인원은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환호를 질렀다. 나머지 병사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내 차례가 왔다. '11 사단'이다.
11 사단이 홍천에 있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서울에서 가깝고 강원도 산골이 아니어서 좋았다.
그런데 그곳이 대한민국에서 행군을 가장 많이 하고, 1군 예하부대(전시에 강원도 어디든 투입되는 부대)라 훈련량이 높았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견뎌내자.'라고 다짐했다.
보충대에 도착한 낡은 육공트럭에 몸을 싣고 11 사단 훈련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