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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Sep 21. 2020

꺼낼 수 없는 문장


애야 저 나무는 치워

네 키보다 높은 나무는 너의 기운을 막는단다

육년동안 자라기만한 무성한 고무나무 아래에서

신내림을 받은지 칠일된 고모가 저주를 퍼부었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면 괜찮을텐데

십칠일째 계속된 장마를 바라보며

우리 집 강아지는 목줄을 입에 물고

파란색 중문을 노려본다


그 실이 터진 실밥이었다면 붙잡지 않았을 것을

그 붙잡은 실 때문에

실실 웃음이 나고 

배시시 웃다말고 터진 바지를 부여잡고

바지춤 사이에 파고드는 바람이 서늘하다


달력을 넘기면 9월이 8월을 지우고 8월이  7월을 지우고

7월이 6월을 지우고 6월이 5월을 지우고 5월이 4월을 지우고

4월이 3월을 지우고 3월이 2월을 지우고 2월이 1월을 지우고

1월이 12월을 지우고 넘길 종이가 남지 않은 순간

그렇게 한 살을 채운 바람이 늙어서 멍했다


고모야

이 나무는 가망이 없다

나도 나무처럼 될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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