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작은 꿈이 있다. 작은 텃밭에 상추, 시금치, 토마토 채소를 심고 기르는 것이다. 우습지만 키우는 방법도 잘 모르고 키울 땅도 없다.
아파트 옆 라인에 고추나무가 열 그루 남짓 심어 있다. ‘나도 여기에 심어볼까?’ 잠시 생각했다. 이주 전 아침 걷기 운동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 꽃집 앞에 토마토 모종이 나와 있었다. ‘이게 좋겠다’ 싶어 키울 줄도 모르면서 토마토 모종을 우리 가족 수만큼 샀다.
토마토 모종을 베란다에 뒀다.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밤 베란다에 빨래를 걷으러 갔다. 아뿔싸 모종이 약간 누런 빛을 띠고 있었다. 난 소리쳤다. “앗, 토마토 모종이 죽으려고 해” 아들 녀석이 달려왔다. “엄마, 토마토 나무 죽으면 어떻게 해요! 빨리 심어요” “그래, 지금 아니면 얘가 정말 죽겠다.”
깜깜해서 땅도 잘 보이지 않는 밤, 우리가 사는 라인 계단 바로 옆에 터를 잡아 땅을 팠다. 토마토 나무를 심고 흙을 꼭꼭 덮어주었다. 잘 보이는 곳에 심으면 사람들이 보면서 좋아할 것 같았다. 혹시나 열매가 열린다면 사람들이 따가지 않을 것 같은 자리다.
최근 들어 비가 두어 차례 내렸다. 토마토 나무는 이내 꽃이 피었고, 드디어 열매까지 열렸다. 아파트 베란다와는 차원이 다르게 잘 컸다. 자연은 정말 위대하다. 토마토 나무는 금세 가지가 무성해졌다. 가지가 무거워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걸 어떻게 일으켜야 할 텐데, 볼 때마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아침에 출근해 밤에 들어오는 우리 가족, 토마토 나무는 사치였나?
출근길, 사 층 사는 어르신도 보기 안쓰러웠는지 말씀하셨다. "저기 화단 쭉 가면 지지대가 있으니 주워다가 세워요" "아, 예 알겠습니다". 말은 남생이처럼 잘했지만, 그렇게 또 이틀이 지나버렸다. 화단 쪽을 찾아봤지만, 지지대를 찾을 수도 없었다.
토요일 바자회 봉사를 마치고 무거운 몸으로 돌아오는데, 계단 옆 토마토 나무에 '지지대'가 세워져 있었다. ‘아, 누구시지? 혹시 사 층 아저씨가?’ 너무 고마운 나머지 바자회에서 사 온 순대를 나누고 싶었다. 사 층으로 내려가서 똑똑했다. "안녕하세요! 저, 혹시, 토마토 지지대 해주셨어요?" "아니요. 제가 한 것이 아니고요. 십삼 층 여자분이 했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곧장, 십삼 층으로 달려갔다. 똑똑했지만 안 계셨다. 난 또 약속으로 나가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순대와 감사 메시지를 남겼다. ‘지지대 세워 주셨나요? 감사합니다. 약소하지만 맛있게 드세요’라고 글을 썼다.
주일 아침, 교회 가는 길 엘리베이터에 한 여자분이 있었다. 가끔 오가며 만나면, 인사하는 사이다. 여자분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순대 놓고 갔어요?" "어! 네에, 혹시 토마토?" 우리는 서로 웃었다. “아, 토마토 나무 지지대 세우는 게 숙제였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지나가는데, 계속 눈에 밟혀서요”“아, 그러셨구나. 감사해요. 그나저나 약속 때문에 순대를 놓고 갔는데 안 상했던가요?” “아니요,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사십 대 후반이나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십삼 층 여자분의 따뜻한 마음으로, 아침부터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