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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경 Jun 06. 2019

음악 울렁증, 그리고 장구

음감이 없는 열두 살 소녀가 있었다.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을바람"이라는 동요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그날 수업이 평소보다 늦어져 시험을 늦게 봤다. 버스시간이 다되어 간다. "버스를 놓치면 두 시간은 걸어가야 한다" 애타는 마음으로, 동요 시험을 봐야 했다. 선생님의 배려로 일등으로 동요 시험을 봤다.


처음으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드는 긴장감, 박자에 맞춰 노래가 시작되었다. “살랑 사알랑 실바람을 잡아 타아 고서, 오색 가을 너엄실 너엄실 너엄 날아아 오네에”. 뭔가 잘못됐다. 평소 연습대로 안 나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산골소녀는 학교 갈 때 버스정류장까지 삼십 분은 꼭 동요 연습을 산이 메아리치도록 했다. 속이 엄청 상했다. 눈물이 났다. 소녀는 버스는 탈 수 있었지만, '음악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이 생겼다.


대학에 가니, 친구들이 노래방 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노래방은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친구랑 한번 간 게 전부였다. 그러니 노래방 가는 것이 곤욕이었다. 자신감 없는 기어가는 목소리는 물론 박자까지 맞추는 게 힘들었다.


소녀는 어느덧 사십이 넘은 중년이 되었다. 지난 이월부터 장구를 배우고 있다. 일곱 명이 모여서 ‘진안 중평굿’을 치고 있다. 나이로 가장 막내이면서 장구 치는 수준도 막내다. 매주 월요일 퇴근 후 일곱 시부터 아홉 시까지 꼬박 연습한다. 하필 에세이 숙제 내는 날이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간다. 치다 보면 어느새 아홉 시다. 열정으로 치고 나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장구를 앉아서 연습하다가 서서 연습을 하는 날은 땀까지 난다. 수준은 떨어지지만, 다른 사람 소리에 묻혀 내가 엄청 잘 치는 줄 착각까지 하게 된다.


작년 십일월 가까운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큰 기대 없이 떠난 여행 첫날, 오키나와 섬의 전통공연을 접했다. ‘에이사’, 오키나와 민속춤이다. '박력 있는 북소리, 절도 있는 춤, 머리카락이 몇 개 남지 않고 주름이 많은 탈을 쓴 노인의 실룩거리는 춤사위'였다. 공연을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동행했던 언니가 질문을 했다. “김해가(언니가 날 부르는 애칭)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네?” “네?”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섬의 젊은 사람들이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이 예쁘네요". 십이 년 전 악기를 배우겠다며, 야심 차게 거금을 들여 산 장구 생각이 났다.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다. 동아리방을 빌려 장구를 쳤다. 결혼 후 아이를 갖기 전까지, 일주일에 한 번 일 년 가까이 친 것 같다.


뜬금없이, "고향이 어디요?” “전라도요” 개그콘서트의 사투리가 생각난다. 맞다! 전라도 피가 흐르는 난 ‘진안 중평굿’이 참 편안하게 다가왔다. 함께 장구를 치는 사람들은 ‘진안 중평굿’이 ‘첫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장구가 ‘첫사랑’이라니 뭔 소린지 이해를 못했다. 해금, 가야금 등 전통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송인님은 ‘각양각색’의 소리를 내는 ‘진안 중평굿’이 지금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길의 ‘첫사랑’이었다고 한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을 깨고 있다.  ‘진안 중평굿’과 다시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대학교 풍물동아리 출신도 많다. 풍물을 가장한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 네 명이다. 대학시절 운동판에서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듣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난다. 저분들로 인하여 지금이 있다고 생각하는 난 그들이 존경스럽다.  


진안 굿 장단을 배운다. ‘인사굿, 문굿, 두 마치, 세마치, 일곱 마치, 여덟 마치, 여덟 마치 도드 래미, 열두 마치, 호호굿’을 배운다. 속으로 말한다. '오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자존감 떨어져' 


"창피해서 담부터 안와야 것네".  

장구 경험이 있는 선배님은 나를 격려한다.

“열심히 따라오면 돼!”

 “우리는 학교 다닐 때 한가락을 일 년씩 배웠어, 이 정도면 잘하는 거야”

“몰라도 대충 흥으로 따라와"

"잘하고 있어"

"발전했어" 선배들 덕에 용기가 난다.

 "그래! 이번에는 정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봐야지!"


무대에서 신명 나게 놀아볼 그날을 꿈꾸며, 어쩌면 난 이렇게 초등학교 오 학년 잃어버린 음감을 찾아가고 있는지도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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