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능이 높은 편이었다.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학교에서 단체로 실시한 아이큐검사에서 141이 나왔었다. 하지만 그 아이큐 검사란 것은 주로 언어적 능력과 기억력이 뛰어날 경우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높은 아이큐가 좋은 성적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제 모두가 알지만 그 당시엔 아이큐가 높으면 똑똑하고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나는 언어적 능력과 기억력은 좋은 편이다. 반면 수리·공간지각능력이나 미적인 감각 등은 부족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 똥손‘과 ’ 몸치‘,’ 길치‘가 바로 나다.
앞서 언급했든 나는 지는 걸 싫어하고 근성이 있는 편이라 오기와 성실과 인내로 이룰 수 있는 건 이루는 편이었다. 하지만 애써도 안될 것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마음속으로 지레 포기했다. 내비게이션이 워낙 잘되어 있어 지금은 운전도 하고 다니지만 지금도 복잡한 구조의 건물이나 길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길치본능이 되살아난다. 유연성이라고는 어릴 때부터 찾아볼 수 없어서 어린 시절 태권도를 다닐 때조차도 다리 찢기는 180도에 근접하지 않았고 수영도 몇 달간 배우러 다녔으나 진전이 없었다. 어린 시절 스키를 타러다닐만한 환경은 되지 않았기에 성인이 되어서야 스키를 타봤는데 왜인지 늘지를 않았다. 수영과 스키의 공통점은 내 몸을 어딘가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 몸을 제어하는 건 나였지만 기본적으로 물이나 눈바닥에 내 몸을 자연스레 실어야 하는데 나는 온전히 몸을 맡기는 게 어려웠다. 대학교 때 태권도 동아리에 들어가 매년 열리는 아마추어 전국대회에서 3등(동메달)을 한 것을 보면 나의 운동성향을 알 수 있다. 마라톤도 결혼 전 하프까지 성공하고 풀마라톤을 뛰려 했으나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바람에 아직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오기와 근성으로 가능한 영역은 어떻게든 칠전팔기로 밀어붙였지만 그 걸로만 부족한 영역도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대학 졸업 후 임용을 합격한 후에 왜인지 시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국문과 석사 과정, 혹은 이미 시집을 출판한 시인, 신춘문예 지망생 등으로 이루어진 시 합평회에 들어가 매주 시 한편씩을 써간 후에 신랄한 글 다듬기 시간을 가졌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장기간 나갔던 걸 보면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중독되는 것. 끊을 수 없는 것. 신춘문예에도 몇 해 도전했지만 낙방하고 그저 이름 없는 무명의 문학잡지에 등단(이라고 하기에도 멋쩍지만)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지금도 종종 습작을 해보기도 하지만 시집을 필사하고 퇴근 후엔 카페에 가서 단어와 표현을 골라보고 적어보며, 일상에서 시가 될만한 것을 찾아보던 그런 열정도 시간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좋은 시를 써서 좋은 시인이 되어 이름도 날려보고 싶었던 그때의 꿈은 지금도 어느 정도는 유효하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고 살면서 이제는 그때보다 더 세속적이 되어 지금은 돈도 많이 벌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이 하고 싶은 것들을 누려보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고3 때는 원하는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느껴지듯 생애주기에 따라 욕망도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