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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시선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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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정과 열정사이 Oct 09. 2024

박쥐인간

핸드폰 안에 너를 찾는다

나는 오늘도 찾는다. 당신이라는 흔적을...,


'이제 그만해야지', '정말 더는 아니야..., '나는 바람에게 말하듯 속삭였다. 물론, 카페안의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는 아니다. 원목의 테라스가 멋져서 들어온 이 카페는 신상 같다 모든 게. 정오의 햇빛에 모든 게 반짝거린다.

회색의 콘크리트 골조가 자연스레 내려온 투박한 멋. 요새말로 트렌디하다. 직원들도 신상, 에스프레소 머신도 신상, 드넓은 원목의 반짝임도 온통 새것들.


나는 남색 앞치마를 예쁘게 두른, 멀쑥한 어린 남직원에게 주문을 청한다.


"플랫화이트 한잔. 뜨거운 걸로요."

"원두 종류는 뭘로 드릴까요..?"


"음.., 산미 없는 걸로요"(당연한 걸 묻네.., 물론 이 직원은 날 모른다)

 당연한 거지만 이 프로세스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를 새삼 깨닫는다. 자주 가는 곳, 익숙한 직원들은 내 주문을 자연스레 안다. 내가 신맛의 원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날 모른다...'는 것에서, 자유로운 바람 한줄기가, 가슴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몇 주간, 난 간절히 '날 모르는 곳'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무슨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모르는 곳이 필요하다니...,

그렇다, 실은 불안했던 것이었다! 그것도 몹시. 이 방문도 사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누군가의 노크소리,

전화 벨소리에 쫓기듯이 서둘러 온 곳이었다. '휴식'과 '집중'이 잠시라도 필요했기에.


그 '침범'이라는 불안감, 그건 모르는 타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다.  익히 잘 아는 얼굴들이다.


그 직원은 나에 대한 '데이터'가 어떤 것도 없다. 그래서 커피 원두 종류도 무엇을 시킬지 전혀 예상치 못한다. 그것이 나에겐 맘이 놓이는 포인트였다. 지난밤을 설친 내 몸에게 카페인은 별로 좋은 처방은 아닐지라도..,

 

나는 지금도 익숙한 얼굴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집 문을 두들릴 것 같아, 맘이 불안하다. 마치, 며칠 전에 '구원 oo' 울긋불긋한 전단을 들고, 현관문을 두들기는 종교 포집원들과 비슷했다. 그들의 방문은 늘 내

예상을 벗어나고, 불쾌하고 기이하다. 그걸 안 이상, 내 집이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휴, 당장 이사를 가야 할까..., '그러기엔 결정거리가 너무 많다. 그래서 난 이 정오 한낮에, 피신하듯 조금 떨어진 곳의 '신상카페'로 피난하듯 들른 것이다. 당신들은 이 작가가 무슨 피해망상을 쓰고 있나 하겠지. 물론 이해한다. 하지만 난 카페인에 의해 날카로워졌을 뿐, 지극히 정상이다. 당신들이 잘모르는 그런 자들이 있다. '모기떼'같고 온통 거짓을 말하고, 남의 집을 서슴없이 침범하는 이들.

 그들은 나와 무척 닮은 이목구비의,

친숙한 얼굴들이지만, 얼마전 부턴가 너무 낯설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해는말길, 그들의 표면적 생김새나 얼굴 표정이 무섭거나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친근한 말투에, 말끔하고 이질적이지 않고 선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 점이 무섭도록 소름 끼치는 점이었다. 평범한 선한 얼굴이 울부짖는 야수처럼 변하는 것이.


이 불안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게, 그녀의 방문 이후였다. 그때도 방문자는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이제, 딸과도 살아봐야지.."
친근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왜 즉각, 내 피부는 온통, 소름이 돋았을까. 그녀의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로, 일주일 넘게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는 전화벨이 두려워지기 시작하더니, 쫓기는 이가 되버렸다. 빨리, 이 불안함을 다른 중독으로 돌려야 한다. 신기하게 불안은 또 다른 불안거리로 이어졌고, 거기서 조금은 해소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다른 중독거리인, 지난 그의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다.

내 휴대폰으로 이미 잘 알고 있는 아이디를 인터넷 검색창에 검색한다. 온라인에 남겨진, sns의 그의 사진, 근황이며 그에 달린 댓글들, 프로필에 추가된 팔로워를..., 거기서 더 나아간다. 이제는, 내 개인 카*을 차단했는지를 알고 싶다. 그래서 그 방법 또한 익숙한 녹색 검색창에 두드려본다.


 '아니, 내가 왜 이러는 것인가..., '


나는 불과 일주일 전까지 아무런 궁금함도 없었다. 내 성격상, 이미 활활 타서 끝나버린 것에는. 그런데 요 며칠은 미친 '열병'에 걸린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 이마는 뜨겁다. 볼도 온통 불그레 상기되어 있다. 사주 만세력이라도 봐야 하나, 무슨 날이길래.., (물론 본다고, 그날에 맞는 일진을 예측할 실력은 없다)


 그가 남긴 짧은 코멘트들이. 일 년 전에 남긴 그 사진 포스팅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에게 하는 말인가...' 생각하다가 커피 한 모금을 빨아들인다. 끈적한 팝송이 내 귀를 가볍게 때린다. 한낮의 손님들이 가득찬, 유쾌한 카페에서 난 무얼 하는가. 갑자기 스스로가 무척 짜증스러워졌다. 역시 그 '침입자들'의 영향인가, 그들은 내게 한결같이 유독하다.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끝없이 움울하고 끈적이는 주파수 같은걸 내뿜는다. 마치 컴컴한 동굴 속 박쥐들처럼.



나는 환기차,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두 명, 세 명이 앉아 나누는 속삭이는 대화들이 들린다. 지금보니, 그녀들 중에 한 명이 나와 꼭 같았다. 손 안의 폰을 '꽉'쥐고, Sns를 뒤적이며 다른 이들의 얘기는 한 귀로 듣고, 네모 화면에만 초집중하며 추적하는 안광이.., 그녀의 두꺼운 화장과 미니스커트에도 불구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민낯'을 보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 아래 어두운 근심과 집착, 되찾으려는 혈기어린 눈동자를 보고 말았다.

이럴수가, 그녀는 딱 조금 전까지의 나 같았다.

나는 말했다.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더 이상은.., ' 들릴 듯 말듯하게.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의 그림자에게.


그리고, 동굴 속 박쥐의 눈을 한, 그녀에게.




사진: UnsplashJakob Ow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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