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이 그랬다면, 혹은 차라리 욕이었다면 받아치고 넘어갔을 텐데,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아픈 말을 듣게 되면 그 상처는 더 깊고 서늘하다.
나는 애초에 싸우는 걸 싫어하고, 화를 잘 안내는 편이다. 그냥 좀 양보하고 말지 뭐, 그럴 수도 있지, 오죽하면, 이유가 있겠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하다 보니 가끔 손해를 봐도 차라리 그게 편했다. 언쟁이 오가고 순간의 화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게 더 싫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후회될 때가 분명히 있다. 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감정에 대해 솔직했어도 됐을 텐데, 나보다 어른이니까 그냥 웃어넘기거나 입 꾹 닫고 참아내곤 했다. 내 감정보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체면을 생각했고,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상황은 더 많아졌다. 감정이 격해질 때면 오히려 말이 턱 막히고 눈물부터 차올랐다. 그런 상황이 자주 없다 보니 내 성격이 그렇다는 것도 어른이 한참 되어서야 알았다. 태생이 그런 걸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럴 때면 한여름에 오리털 파카를 껴입은 듯이 답답하고 벗어던지고 싶었다.
혼자 삭힌 마음은 언제고 고약한 냄새를 내고 상처를 덧나게 한다. 다시 보고 싶지 않지만, 끊어내지 못할 관계라면 마냥 시간 앞에 해결해 달라고 미뤄두기만 했다. 쿡쿡 쑤시는 말과 그 행동들이 마음 안에서 무뎌지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씹어 삼킨 말들은 제각각 소화 시간이 달라 며칠이 걸리기도 하고, 몇 년이 걸리기도 했다. 잊은 듯하다가도 출근길 버스 안에서, 바다 위 노을을 보면서도, 한낮의 동네 산책 길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와중에도, 불쑥불쑥 그 기억들은 잘도 찾아왔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들춰지면 들춰지는 대로 그냥 놔두는 것뿐이었다.
더욱이 내 마음이 온전하지 못할 때 들은 말들은 나를 가차 없이 베어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기어이 시간은 갔다. 내가 조금 더 나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 화석처럼 남아있던 그 말들의 마지막 잔해까지 마침내 날아갔다.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휘 불어온 바람결에 흘러 흘러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팠던 기억마저 다 데리고.
왜 그렇게 말을 하지?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안 하지?
억울해하면서도 어쩌면 상대의 반응 속에서 정말 내가 잘못한 건지 되돌아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나도 찔렸던 건 아닐까. 내가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건 아닐까. 내 마음이 당신과 같지 않고, 서로가 재 온 삶의 자세도 다르다. 하지만 내 서운함이 온전히 내 기준이라 할지언정, 나는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해야 했다. 왜 내가 언짢은지, 그렇게 쉽게 넘겨 말하지 말라고.
혼자 삼켜내는 동안 나는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낼 타이밍을 영영 놓치고 말았다. 그만큼의 마음의 거리가 생겼고, 누군가는 기억하지도 못할 일을 혼자 앓다 빼낸 셈이 됐다.
그때의 내가 지금만큼 단단한 마음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기분 나쁘다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잘라 말할 수 있었을까? 바로 대응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쉽게 상처 받지도, 오래 담아두지도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그놈의 타이밍은 하필 내가 제일 약할 때를 틈타 들어와서는 나를 너무나 괴롭혔다.
화장실이든 할 말이든 참으면 어찌 됐든 병이 될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