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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토끼 Oct 23. 2017

#35 미션 '기분 좋은 하루'

-힘든 일상을 견디는 힘

지난 주말 친한 동생 J를 만났다. 29살(1990년 빠른 생일) 나이에 이제 막 다른 업종으로 취업해 적응하고 있는 3주차 신입사원. 사범대 출신으로 학원 아르바이트를 거쳐 죽 영어 강사로 일해왔던 그녀가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과정을 들었다. 서울의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뭐든 낯선 것’을 대하고 있다는 말에 그녀가 발 들인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J는 자존심은 높아진 반면 자존감은 낮아져 있는 상태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직장에서 자신을 향한 타인의 말과 행동에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원했던 업무를 못 하게 된 답답함과 더불어 생각같지 않은 사람들의 태도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했다. 이를테면 자신보다 6살이나 어린 선임이 생리통약 심부름을 시킨 것에 대해 정말 자신이 했어야 하는 일인지 늦은 고민을 반복한다거나 사장 혹은 과장의 경솔한 공격성 멘트를 쉽사리 털어버리지 못했다. (물론, 나였더라도 그랬을 터.) 그리고 자꾸만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자신의 생각을 잘못 되었다 여기며 해답을 찾으려 애썼다.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랐던 J의 이같은 토로에 안타까웠는데 이왕 버티기로 한 직장을 안 좋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J와 함께 입사한 2명은 금세 관두었을 만큼 쉬운 직장은 아니었다.

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27살 2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취업해 스스로를 낮추며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고, 경력이 절실해서 간신히 버티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고. 그리고 그 고생은 만 3년이 다 되어갈 때쯤 빛을 보았다고. 지금 떠올려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안간힘 쓰던 시절이지만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꼭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과거의 나와 지금의 J는 꽤 닮아있었다. 버티지 않으면 마치 도태될 것만 같은 ‘모 아니면 도’인 환경에서 가진 것 없는 우리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으면서도 일단은 속한 곳에 매달려 헌신할 수 밖에 없는 운명 같았다.

황송하게도 내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기특한 J를 위해 일기장과 펜 두 자루를 사주었다. 힘들 때 오롯이 의지할 사람은 자신 뿐이니 일기를 쓰며 마음껏 표현하고, 안에 쌓인 것들을 순환시켜 보라고 말이다. 머릿 속을 흘러가는 생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말고 그대로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새 다가오는 내일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어제, 월요일을 앞둔 시점에서 나는 생각했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것을 매일의 미션으로 삼자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절대 불행에 빠지지만은 않기로.

불확실한 현실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를 다듬고 다지는 것, 그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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