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카 엄마
"엄마 퀸카! 엄마 퀸카!"
발름거리는 콧구멍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퇴근길은 혼자가 아닙니다. 둘째와 함께입니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10분 남짓 되는 거리를 걸어 집으로 갑니다. 둘째는 열 살이 되었지만 손은 여전히 작고 통통합니다. 우리가 집으로 가는 길은 노을이 지는 서쪽 방향입니다. 오늘의 해가 마지막 붉은빛을 내며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멋진 노을을 눈앞에 두고 혼자 걸어도 좋지만 둘째와 손을 잡고 있으니 모든 게 아름답게 빛나는 시공간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걸을 때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변도 살펴야 합니다. 골목길을 지날 때는 차가 오는 방향을 확인해서 아이를 안쪽으로 서게 합니다. 횡단보도에서는 비보호 회전 차량과 부딪히지 않도록 오른쪽에 세웠다가 중간쯤에는 왼쪽으로 바꿔줍니다. 인도에서도 아이가 걷는 위치는 안쪽입니다. 혼자서도 잘하는 둘째이지만 이제 곧 어린이 티를 벗고 독립을 준비할 아이에게, 사랑받았다는 어린 시절의 흔적을 가득 채워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이 사소한 기억을 꺼내 그 사람을 아껴주기를 바라는 (너무 앞서간) 마음도 조금 얹었습니다.
아무튼, 넌 소중하단다. 언제나.
유월의 앵두 같은 입술로 둘째가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았는데... 발름거리는 콧구멍과 올라가는 제 입꼬리를 숨길 수가 없군요.
엄마 퀸카! 엄마 퀸카! 엄마 엄마 퀸카!
'그래, 엄마가 예쁘지?'
'아직 네 눈에는 엄마가 최고 예쁠 때지.'
문득 이 조그만 아이가 벌써 '퀸카'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지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퀸카가 무슨 뜻인지 알아?"
"응, Queen, 여왕이잖아."
"그런 것도 알아? 많이 컸네"
"응."
엄마 퀸카! 엄마 퀸카!
아이의 노래에 맞춰 다시 여왕이 된 기분입니다.
'길을 비키시오, 여왕님 납시오!'
"그런데 엄마가 왜 퀸카야?"
둘째가 걸음을 멈추고 저를 쳐다봅니다. 신나서 부르는 노래에 이런 교과적인 질문은 하지 말 것은 그랬나 봅니다. 앗, 여왕의 실수!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다시 담을 수도 없지요.
난처한 질문을 해서 난감해하는 저와 난처한 질문을 받고 곤란해진 아이 사이에 있던 침묵이 깨집니다.
엄마 퀸카 아닌데!
어머나! 제주시 노형동 부영 2차 아파트 정문에 있는 GS편의점 앞에서 시간이 잠시 멈추었습니다.
왜! 방금 전까지는 엄마 퀸카라고 빵긋빵긋 웃으며 노래 불렀잖아.
"엄마 퀸카가 아니라 '어머 퀸카'야. 그런 노래가 있어. 엄마 모르지?"
"그런 노래가 있어? 알겠어."
우기지는 않습니다. 엄마가 퀸카가 아니라니 잘못 썼던 여왕의 왕관부터 내려놓아야지요.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며 생각해 보니 너무 웃겼습니다. 평소에도 소음에 무딘 편이라 시계 소리가 거슬려 잠을 못 잔 적도 없고, 창문을 열고 자는 날이면 새벽에 청소차의 소리에 짜증을 내며 깨던 남편과 달리 저는 꿀잠을 자곤 했거든요. 생활 속 소음에 적응해 살면서 청각의 섬세한 부분이 퇴화한 모양이라고 결론을 내며 잘 헹군 수세미를 집게에 걸었습니다.
'그 노래나 한 번 들어봐야겠다.'
https://youtu.be/7HDeem-JaSY
어렵게 찾은 그 노래는 (여자)아이들의 '퀸카(Queencard)'였습니다. 가사부터 먼저 살펴보았죠. '엄마 퀸카'는 당연히 없네요. '어머 퀸카'라고 들은 것도 찾아보니 'I'm a 퀸카'였습니다.
'아임 어 퀸카'가 '암어 퀸카'가 되어 제 귀에는 '엄마 퀸카'로 들린 것이었습니다. 제 귀가 잘못했지만 그 순간의 기분은 아주 최고였어요. 날아서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제 제 귀에는 확실하게 '암어 퀸카'라고 들리겠지요. 그래도 둘째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뭘 해도 귀여운 둘째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