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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n 18. 2023

슬라임을 삼킨 엄마

지금부터 숨바꼭질 시작. 꼭꼭 숨어라.

  일요일 오후 점심 설거지를 끝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 안방으로 들어갔어요. 아이들의 눈을 피해 몰래 말이죠. 몰-래. 침대에 누워 있으니 유월은 푸른빛 여름이네요. 바람에 흔들리는 연둣빛 나뭇잎과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그만 잠이 들었지 뭐예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몰래몰래 들어왔는데, 딱! 걸리고 말았네요. 엄마 냄새 잘 맡는 둘째가 옆에 누워서는 제 맨살을 만지며 놀고 있더라고요.

     

  착! 출렁출렁.

  아니 이 귀여운 아기 고양이 같은 녀석이 착, 하고 치면 배가 출렁대는 모습에 완전히 빠져있네요. 눈을 뜨고 한참을 내려보았는데 아이는 출렁이는 엄마 뱃살에 흠뻑 빠져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음, 사실은 제가 더 자고 싶었지요. 그래서 눈을 다시 감고 자는 척을 했어요. 쿨쿨. 그런데 이 녀석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배 위에 앉았네요. 엄마가 자는지 깼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어 보입니다.

 

  착! 출-렁!

  착! 착! 출렁출렁 출렁!

  아이는 무엇이 그리 재미난 지 까르르 넘어가네요. 아이의 웃음소리에 저도 모르게 하하 웃어버렸어요.


  “여름아, 재미있어?”

  “응! 히히, 히히히히, 하하, 하하핫!”


   평소에도 잘 웃는 여름이는 오늘도 웃음보가 빵 터졌어요. 아이의 손바닥이 스치자 뱃살 파도로 꿀렁꿀렁 난리가 난 모양입니다. 아이는 그게 웃기다고 계속 웃고 있어요. 아이의 웃음에 잠시 머물다 보낼 예정이었던 뱃살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뱃살도 그걸 아는지 무장해제되어 더 출렁거리네요.

     

  통통한 고사리 손으로 엄마의 뱃살을 조몰락거리던 아이가 말했어요.


 엄마 뱃살은 몰랑몰랑, 슬라임 같아!

  아! 정말,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곧 헤어질 뱃살이라고! 엄마 내일부터 살 뺄 거라고! 속으로 암만 외쳐도 들리기나 하겠어요? 아이는 찰랑찰랑, 몰랑몰랑 뱃살이 마음에 쏙 드나 봅니다.


엄마 어제 슬라임 먹고 잤잖아. 몰랐어?

  어머나, 이런 이야기는 여덟 살 아이에게는 충격인가요? 아이는 걱정과 의심을 담아 쳐다보았어요. 그래서 저도 장난기가 가득 담긴 눈으로 아이를 쳐다봤지요. 이 귀여운 녀석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줄까요, 말까요?


  진짜, 내일부터 헤어질 뱃살인데 그걸 가지고 친환경 무공해 무독성 슬라임을 만들어 노는 아이에게 심통을 부려 봅니다. 저는 지금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일을 겪고 있다고요. 본격적인 수영복의 계절이 오기 전에 올해는 꼭 살을 빼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살을 뺀다면 아이의 귀여운 모습과 뱃살 슬라임이 동시에 사라질 위기예요. 얼마나 아이가 섭섭해할까요? 에라, 모르겠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 웃는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여름이의 행복을 위해 부엌으로 갔어요.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었지요.

 

  딱!! 취이이익!

  우리 집 귀염둥이 여름이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오늘도 뱃살 슬라임을 만들었습니다. 아주 꿀맛이네요! 역시 여름에는 시원한 맥주가 최고입니다! 어머나! 맥주를 마시기 위해 핑계를 찾은 건 아니에요. 우리 집 애가 슬라임을 좋아하네요, 슬라임.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입니다. 서쪽 하늘에는 석양이 지고 있어요. 참 아름다운 제주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혼자 바쁘게 다니는 아이가 하나 있네요.

  “여름아, 뭐 찾아?”

  “찾았다! 슬라임, 엄마가 안 먹었네?”

  “응! 이제부터는 놀고 정리 잘해. 안 그러면 엄마가 ‘꿀꺽’할 거야.”

  “(뱃살을 쓰다듬으며) 배찰아, 배찰아, 절대 먹으면 안 돼! 아야 해.”

  배찰이라는 별명까지 붙인 것을 보니 아이는 제 뱃살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네요. 저는 하루라도 빨리 이 뱃살과 영원한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데 말이죠. 이 배찰을 이번 여름에도 데리고 살아야 할까요?      





  다정한 독자님! 오늘도 무지개인(공)간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인 2021년 유월에 적은 글입니다. 일요일 오후에 꺼내 읽으며 나이는 2살이 더 늘었지만 뱃살도, 아이의 귀여운 웃음도 그대로라는 사실에 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아이는 여전히 말랑한 제 뱃살을 사랑하고 있어요.

  배찰이는 참 오래도 사랑받고 있네요. 이제 한 몸인가 싶겠지만 정 주지는 않을 겁니다.

  

  일요일 오후, 작은 행복을 찾으시면 좋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 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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