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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Sep 22. 2023

엄마가 간다! 철퍼덕

  178


  이것은 무슨 숫자일까요?

  갑자기 이런 문제라니 너무 뜬금없나요? 그럼 객관식으로 해볼까요?

  

  ① "사춘기 아들아, 178cm까지 자라자!"

  ② 누가 맞출까 기대하며 글을 쓰는 지금의 심박 수

  ③ 어제 점심으로 먹은 초밥의 밥알 수

  ④ 지금까지의 볼링 최고 기록

  ⑤ 우리 식구의 나이를 모두 더한 값


  이렇게 바로 알려 드리긴 정말 아쉽지만, 브런치스토리는 영상이 아니니까요.

  정답은 바로 ④ 지금까지의 볼링 최고 기록입니다.

  

  물론 아주 아주 아주 오래 전의 기록입니다. 기운이 차고 넘치던 스무 살쯤에 기록이지요. 그때는 볼링에 빠져 일주일에 서너 번씩 친구들과 볼링장을 다녔어요. 항상은 아니지만 자주 저보다 덩치 큰 남녀 친구들을 물리치고 '통뼈'라고 부르는 골밀도가 높은 강점을 가진 말라깽이가 우승을 했습니다. (이 문장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는 '말라깽이'입니다) 그날 부상으로는 '엄지 척'과 소주 한 잔을 받았어요. 아무튼 과거의 빛나는 공 굴리기 실력은 볼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는 합니다.


  옛날 옛적의 일 말고 최근 5년 이내의 기록만 본다면 147점입니다. 그 이후로 실력을 차곡차곡 쌓으면 좋았겠지만 그날부터 체력이 뚝, 뚝, 뚝 오늘 아침의 기온처럼 뚝 떨어졌습니다. 147점을 기록했을 때는 그나마 11파운드의 볼링공을 들 수 있을 때였지만 지금은 손목의 힘이 종잇장 정도라 7파운드도 무거울 지경입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짜르르 굴러가서 팍! 하고 볼링핀들이 넘어지는 경쾌한 소리를 듣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공을 굴리면 굴~렁 굴~렁 소리를 내며 힘겹게 굴러가더라고요.


  "엄마, 나 진짜 소원이 있어."

  우리 춘기의 소원은 볼링을 치러 가는 것이랍니다. 그까지 거, 어렵지 않은 일에 소원 타령을 하는 춘기가 (아직은) 여전히 귀엽습니다. 마침 저도 요즘은 얼마나 칠 수 있나 궁금하기도 했고, 춘기에게 지난날의 찬란한 볼링 실력을 물려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산책도 할 겸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볼링장으로 갔습니다.


  볼링은 여전히 인기가 많은 운동인가 봅니다. 평일 저녁인데 사람들이 가득입니다. 우리도 얼른 볼링화로 갈아 신고 자신이 사용할 볼링공을 골랐습니다. 8파운드 볼을 고르고 싶지만 무거워서 6과 7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춘기는 남자 아이라 확실히 다르네요. 저는 무거워서 두 손으로도 들지 못할 14파운드의 볼링공을 춘기는 당당하게 고릅니다. 마지막 자존심인지 호기심인지 저도 들어봤다가 손목이 꺾일 뻔해서 슬쩍 내려놓았어요. 

  볼링을 칠 도구가 모두 준비되면 이제는 마음을 갖추어야 합니다.


  "춘기야, 공은 이렇게 잡고 하나, 둘, 세 걸음 걷고 알지?"

  "춘기야, 팔은 이렇게 올리는 거야."

  "집중! 마지막까지 집중해야 해."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이죠.

  "서로 응원해 주는 거야!"

  "응, 엄마가 먼저 해."


  아하, 이 녀석! 함께 산 지 14년, 이것은 양보가 아니라 춘기가 뛰어넘고 싶은 점수가 제 점수라는 말입니다. 그래요, 제가 먼저 게임을 시작합니다. '서로 응원하며' 즐기는 볼링이라고 말했지만 볼링공을 잡고 선 순간은 최선을 다하고 싶고, 최고의 결과를 내고 싶어 집니다. 얼굴에는 즐기는 듯 미소를 지어 보지만 머릿속으로는 스트라이크를 치는 장면을 그리며 공을 굴립니다.

  오늘도 비장의 각오, 즉 터키(스트라이크를 세 번 연속)를 치겠다는 욕심을 내며 출발선에 섰습니다.

  '얘들아, 잘 봐. 볼링은 이렇게 치는 거야.'

  한 발, 두 발, 세 발.

  '이제 부드럽지만 강하게 공을 내려놓아야지!'

  

 쿵!!!!!!!


  아니, 이 무슨 소리인가요? 볼링장이 무너지기라도 했나요? 왜 제가 바닥을 보고 있죠? 세 손가락에 끼여 있던 공은 마음대로 데굴데굴 굴러 레인 옆으로 굴러가고 있었고, 저는 마루에 큰 대(大) 자를 그리며 앞으로 넘어져버렸습니다. 공이 너무 무거웠나요? 아니면 제가 너무 휘둘렀나요? 

  잠깐, 잠깐.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시계입니다. 딱 3초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군요.

  안된다고요? 그렇다면 신속하게 제자리로 복귀하는 방법뿐입니다.


바닥을 보고 있는 시선을 거둔다.
무릎을 접어 세운다.
양손으로 바닥을 밀며 일어난다.
신속하게 내 자리로 간다.
시선은 정면 고정.

 

  그런데 그게 되나요? 시야가 아주 와이드 앵글로 잡힙니다.

  '안타깝게도... 레인이 꽉 찼군요!'

  볼링장이 흔들릴 만큼 쿵! 소리가 났으니 안 본 사람도 없겠네요. 그래도 이제 아줌마 경력이 좀 쌓였다고 방금 전의 일이 금방 털어집니다.

  '괜찮아. 실력으로 보여 주면 되는 거야.'

  오, 이미 넘어진 일, 너무 얽매이지 않고 이제 잘 치면 된다는 자세! 제 태도이지만 마음에 드는군요. 비록 첫 시작은 망쳤지만 결국 119점을 내며 게임을 마무리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무척 만족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세 자리만 나온다면 만족스럽습니다. 이것은 제가 '우리 집 볼링 1등'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는 여유로운 마음에서 흘러나온 것이지요. 


  오랜만에 다시 볼링을 치러 가고 싶은 금요일입니다. 춘기의 긴장감 넘치는 표정과 날카로운 눈으로 볼링핀을 쳐다보는 그 모습이 다시 보고 싶은 날이네요. 춘기의 힘 있게 굴리는 '힘 볼링'도 보고 싶고요.


  춘기야, 오늘은 한 게임 어때?





  다시 불금입니다. 요즘 많이 느끼는 것은 같은 일을 겪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이 무척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더 행복한 쪽으로 선택하고 반응하시면 좋겠습니다. 결국 나를 위해서 말입니다.

  행복한 금요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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