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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n 20. 2023

이번에는 AI도 틀렸다

  ‘전세금 반환대출’

  ‘역전세’


  틈만 나면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수시로 검색을 했더니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도 전세금, 대출 심지어 전세사기까지 알고리즘으로 생성되었다. 쇼핑 카테고리에서는 아주 현란한 전략으로 시선을 끌고 마음을 훔쳤던 AI 알고리즘이 이번에는 계속해서 필요 없는 정보를 보여주며 내 마음에 벌집을 쑤셨다. 그 똑똑한 AI도 이번에는 틀렸다. AI가 보여주는 정보는 나에게는 쓸모도 없을뿐더러 겨우 붙들어 매고 있던 괜찮다는 마음마저 무너지게 만들었다.


  지나간 일이니 이제야 이야기를 하자면 내 마음을 아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놓았던 것은 인스타그램에 뜬 카드뉴스였다. 내가 ‘2년에 13억을 번 사람’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자꾸 '전세금 반환대출'을 검색하며 뉴스와 블로그를 뒤지자 이번에는 더 자극적인 제목인 ‘부동산으로 109억을 번 이야기’를 찾아 첫 화면으로 떡 하니 올려 나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1000억이라고 해도 솔깃해서 넘어갈 형편이 아니었다. 때로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게 유혹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가 되는구나. 결국 AI는 며칠 동안 자신이 쌓은 실패 경험을 데이터로 남겼을 것이다.


  아주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어쩌다 부족한 부분이나 실수를 보이면 우리는 ‘인간적이다’라고 한다. 모순되지만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AI가 사용자인 내가 필요할 만한 검색 결과를 추천해 주었는데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이라면 이것은 AI가 ‘인간적인’ 게 되는 순간일까? AI에게서 인간미를 보았지만, 그래도 나의 실패에 따뜻한 말과 마음을 건네주는 이웃에 사는 인간들이 더 아름다웠다. 3억을 잃은 역전세 사태도 이제 결론은 정해졌고 서류상으로 정리하기 위해 만날 시간만 남겨두고 있다. 그래도 더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단지 법무사에서 만나는 날, 덜 상처받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마련해 두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만에 만나는 세입자이자 매수인 앞에서 눈물이라도 쏟을까 봐 걱정이었다.

      

  1년 전 유월의 어느 날,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10개의 친절을 베풀었어. 그럼 몇 개가 다시 너에게 돌아와야 할까?"

  “나는 그게 1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해. 나에게 1개의 친절이 다시 돌아왔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9개의 친절은 사라지는 게 아니야. 분명 그 순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갔을 거야. 내가 베푼 친절은 세상에 베푼 친절이야. 그래서 세상이 돌고 도는 거라고 생각해.”

  그때 나는 개뿔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뜬구름처럼 살았구나, 싶으면서 이내 마음을 잡아 지금까지의 삶과 태도는 부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이 순간, 이 대화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무지개인간아, 오늘은 기분이 어뜨노?”


  최근 엄마와의 통화는 늘 같은 질문으로 시작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듣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자고 일어났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자꾸만 물어보셨다. 엄마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지만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기에 기운 없는 목소리를 감추고 엄마를 안심시켜 드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달랐다. 자고 일어났는데 세상이 바뀐 날이었다. 일어난 일 자체가 아니라 과정에서 느낀 숱한 좌절감을 모아 아주 실패한 사람으로 만든, 스스로 만든 유리 감옥에서 걸어 나온 날이었다.

 

  “엄마, 생각을 바꾸기로 했어요. 내가 세상에 베풀어야 할 게 많은가 봐. 그래서 세상이 자기 몫을 먼저 챙기고, 이제 나에게 좋은 일을 가득 선물해 줄 계획인가 봐.”     


  엄마는 어떻게든 애쓰고 있는 딸의 모습이 더 안타깝고 아프게 느껴졌을까. 그래, 그래만 반복하다 통화를 마쳤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동네로 산책을 나갔다. 아직은 쌀쌀한 공기가 있지만 며칠 동안 따뜻한 날이 이어지더니 하얀 수선화가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잃었다고 생각하는 대신 씨감자를 땅에 묻었다고 생각하자. 날렸다고 생각하는 대신 누군가는 이득을 보았을 테니 베풀었다고 생각하자.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80%의 회복 상태가 된 것 같았다. 아직 실패가 주는 상처는 남아있지만, 매 순간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일이었다. 길을 잃고 실패했지만 인간미도 풍겼고 또 맡았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더 자주 안부를 건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띠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으로 마흔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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