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동산
“엄마, 엄마는 왜 그렇게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아?”
“엄마는 어렵게 살아서 너희들은 편하게 살면 좋겠어.”
서른이 넘어서 듣게 된 엄마의 소원은 자식들에게 집 한 채씩 물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엄마의 소원대로 자식인 우리는 집을 한 채씩 가지고 있다. 각자 열심히 살았던 몫과 은행의 지분이 더해져 방 한 칸 또는 화장실 하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것인 그런 집을 가지고 있다. 하루 동안 일과 사람에 치이고 돌아온 집에서 편안하게 머무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 아마 엄마에게 집은 편안함을 주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엄마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고생하며 ‘열심히’만 사는 부모님이 나는 불편했다. 막내가 회사에 취직한 날 저녁, 아빠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한 잔 드시고는 말씀하셨다.
“이제 다 끝났다. 이제 자전거나 타고, 여행도 다니며 즐겨야겠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밝자, 부모님의 오늘은 어제와 이어진 삶이었다. 좋은 음식도 즐기고, 운동도 하며 이제 좀 편히 쉬며 여유를 가지길 바랐지만 아직 젊고, 건강하다는 이유로 다시 충실한 하루를 보내셨다.
자식들이 모두 결혼을 하고 아빠는 또 말씀하셨다.
“이제 뭐 있나? 엄마와 둘이서 알콩달콩 여행이나 하면서 돈이나 쓰고 살란다.”
이번에는 두 분이 여행을 다녀오셨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쓰셨지만 소록도로 봉사 활동을 가 일주일을 보내고 오셨다. 그때는 나도 아이를 낳아 기르며 철이 들었던지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소원이 자식들이 ‘편하게’ 사는 것이듯, 나도 부모님께서 때로는 지루할 만큼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시길 바랐다.
가정을 꾸리고 인생을 살며 프로젝트 같은 일들을 아빠와 엄마는 손발을 맞춰 잘 해내셨다.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해치웠다는 속 시원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하셨다. 끝이 나야 하지만 부모님의 역할은 끝이 없었다. 다시 열심히 일할 이유를 찾고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신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님의 삶이니까, 부모님께서 바라는 대로 사는 게 가장 편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이해했다. 하지만 마흔을 지나고 보니 이제야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나이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얻은 노력의 귀한 산물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만 낳으면 내 할 일이 끝날 거라고 섣부르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시작이었다. 첫 아이를 낳으니 동생이 필요하다는 ‘to do list’가 생기고, 둘째를 낳고 보니 육아서뿐만 아니라 교육열에도 불을 켜야 하는 ‘must’ to do list가 생겼다. 운이 좋게 두 아이를 유명한 유치원에 보냈으니 이제 할 일 다 했다 싶었지만 3년은 금방이라 곧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알아서 잘하겠지 싶었는데, 중학생도 엄마의 손길은 필요했다. 한 번은 내가 아이들과 언제쯤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부모님의 삶에 비추어 보았을 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젠가 TV에서 본 예순 할아버지도 노모의 눈에는 그저 아기처럼 보였고,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챙기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TV 속 이야기에 더 공감이 된다.
우리 부모님께서 ‘이제 다 해치웠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시 성실하게 사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예쁘고 잘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부모님께서 나를 세상에 내놓았기에 힘들 때는 나누고 싶고, 좋은 일에는 더 기뻐해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를 거쳐 우리 집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가족의 삶이 연결되고 이어지는 순간, 지금 내 몸이 담긴 반신욕조의 물처럼 따듯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자본주의적인 집이 갖고 싶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따뜻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낼 그런 집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이제 내가 바라는 집을 더 상상해 보아야겠다. 이번 경험은 다음 집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