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늘 질문을 하지요.
"커피를 마시고 싶은 걸까, 커피점을 보고 싶은 걸까?"
"제주 생활은 다 좋은데 가끔 이곳에 없는 모래커피가 정말 정말 마시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게 뭐예요?"
모래커피는 곱게 간 원두가루와 물을 커피 포트(제즈베)에 넣고 모래가 담긴 가마에 열을 올려 고온의 모래열로 끓인 커피입니다. 커피가루와 함께 그대로 작은 잔에 부어 마셔요.
마시는 방법은 고운 커피 가루가 가라앉도록 1분 정도 기다려줍니다. 그리고 천천히 마시죠. 저는 기다리는 1분 동안 따뜻하게 데워진 커피잔에 입술을 대고, 오늘의 커피 맛을 처음 느끼는 첫 한 입이 가장 행복합니다. 커피의 향과 맛이 이 한 입에 모두 응축된 것 같아요. 음, 굉장히 부드럽고 감미로운 커피의 향은 아니고 카페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아주 강렬하고 쓴 커피의 향이 혀 끝에서부터 입 안으로 퍼집니다. 찌릿한 전율을 느끼게 되지요.
홀짝홀짝 자꾸 마시고 싶지만 잔이 작아요.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마시라고 (아마도) 위에 먼저 도착한 커피가 자꾸 신호를 보냅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아침에 이 커피를 마시고 커피점을 치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해요. 커피의 높이가 낮아질 때마다 커피점에 대한 기대가 높아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커피의 맛도 처음의 강렬한 느낌에서 조금 더 부드러운 맛으로 바뀌고요. 커피 한 잔이 다양한 맛과 향을 가졌다는 점이 참 매력적입니다.
터키식 커피의 처음과 중간으로 경험했다면 이제 마지막 맛을 볼 차례이죠. 커피잔 아래에서 1/3 되는 지점에 도착했다면 지금부터는 '신중하게' 마실 타이밍입니다. 남은 잔을 벌꺽 마셨다가는 가라앉은 커피가루들을 입 안에 훅 들어올 수 있거든요. 커피 가루를 조금은 마셔도 괜찮지만 식감이 별로입니다. 그래서 모래커피를 주문하면 이럴 때 마실 생수 한 잔이 같이 나와요.
잔에 담긴 커피 물을 모두 드셨다면 이제 커피점을 볼 수 있어요. 이건 뭐 선택이긴 합니다만 저는 재미로 봅니다. 얼마나 정확한지 신뢰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기대하면 살게 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때가 있는데 다행히 잘 잊어버리는 편인 저는 실망보다는 좋은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만 기억할 때가 많아 기대에 대한 대미지가 크지 않습니다.
커피점을 보는 방법은 먼저 커피잔 위에 잔 받침을 뒤집어 얹어 입구를 막고 왼쪽으로 세 번 원을 그리며 돌린 뒤 재빨리 뒤집어 최소 1분에서 느낌이 오는 수 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시 잔을 뒤집어 커피가루의 흘러내린 모양을 보며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이미지 3가지 정도를 찾고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처음 모래커피를 마신 곳은 대구 수성구에 있는 카페입니다.
이곳에서는 커피잔과 받침이 꼭 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았어요. 카페 사장님께서는 가장 좋은 점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모래커피를 마신 날인데 이런 해석을 들어서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고 싶은 욕구가 넘친 날이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 사진을 보면 그날의 기분이 떠오릅니다. 무려 5년 전인데 말입니다.
얼마 전 제주에서도 모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오픈했더라고요. 집에서는 40분이 넘게 걸리지만 그래도 다녀왔습니다. 협재해수욕장 근처에 있고, 골목이었지만 친절한 내비게이션이 잘 안내를 해준 덕에 다녀왔어요.
터키식 커피 추출도구인 제즈베에 커피가루와 물을 넣고 고온의 모래로 커피를 끓이는 장면입니다. 보고 또 보아도 참 신기합니다. 원두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카페 이름인 '어둑' 블랜드를 선택했어요. 이곳에서는 튀르키예의 전통 과자인 '바클라바'와 제주 전통 음식인 지름떡(기름떡)에 백종원 님 덕분에 유명해진 '카이막'을 곁들인 디저트도 만날 수 있었어요. 다 맛있었습니다. 듬뿍 넣은 재료에서 진심이 톡톡 터졌어요.
이날도 터키식 커피를 마시고 커피점을 보았습니다. 사장님께서 커피점을 공부하셔서 직접 읽어주셨어요. 잔을 삼등분해서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서 이야기해 주셨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지요. 남은 2023년 좋은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럼요, 그럼요, 믿습니다. 믿고 말고요.
토요일 아침에 터키쉬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멀어서 못 가고 사진을 꺼내보며 글을 쓰며 마셔보았습니다.
함께 읽으셨으니 남은 하반기가 걱정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우리 함께 나눈 겁니다.
행복한 토요일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