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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Oct 28. 2022

주사위는 던져졌다.

제주교육 - 중학교 배정 

  육지에서 제주로 정착한 학부모들이 가장 당황스러운 때는 아마도 중학교 배정일 것 같아요. 육지에서는 보통 근거리 중학교 배정을 위해 5학년 말부터는 원하는 중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는 등 만만의 준비를 시작하죠. 그래서 제주도 당연히 그렇겠거니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많이 달라요.



  10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6학년인 여름이가 '2023학년도 중학교 배정원서'와 '2023학년도 제주시중학교 입학 시행 요강'을 가져왔어요. 딱 봐도 꼼꼼히 읽고 작성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었지요. 우리 여름이가 언제 커서 중학교 갈 나이가 되었지,라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순서겠지만 '12 지망'까지 그려진 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학교도) 많다. 여름이는 어느 학교에 가고 싶니?"

  "엄마, 나는 H 중인데 그것보다 선생님께서 정원을 잘 보고 눈치껏 지원해야 된대."

  제주의 중학교 배정은 출신 초등학교 기준입니다. 여름이의 초등학교는 제주시 2 학교군 서부 지역이라 남학생들은 9 지망, 여학생들은 10 지망까지 적어서 제출해야 해요.

  '담임선생님께서 눈치작전을 권하셨단 말이지. 그렇다면 원하는 곳을 쓴 여름이가 운 좋게 원하는 학교에 갈 확률이 커질 수도 있겠구나.'

  그날 밤, 저는 초긍정 자아가 그려 준 희망 주문에 따라 '눈치 없는 전략'으로 집에서 가까운 학교 순으로 1 지망부터 채웠고, 여름이는 지원자 성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해서 다음 날 선생님께 제출을 했어요.

 



  "어머니, 통화 괜찮으세요?"

  "네, 선생님."


  선생님의 전화는 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지만 6학년 선생님의 전화는 더더욱 그래요. 찰나의 시간에 '친구와 싸웠나, 넘어져서 다쳤나' 하는 별별 걱정이 스쳐 지나갔어요.


  "어머니, 중학교 배정원서를 받았어요. 1, 2 지망 학교는 매년 지원자 수가 정원을 넘기는 학교라서 만약 최악의 경우에는 2 지망에서 추첨 기회도 얻지 못하고 후순위 지망 추첨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럴 경우에는 1 지망에는 원하는 학교, 2 지망에는 버스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며 정원 수-지원자 수가 그나마 안전한 범위 안에 드는 학교를 지원하고 있어요. 지금 지원한 1, 2 지망 학교 중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는 버려야 되는 상황입니다."

  

  역시 6학년 담임 선생님이십니다! 군더더기 없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방향을 콕 집어 완벽하게 설명을 해주셨어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왜 '눈치'가 필요한 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제주의 중학교 전산 배정 방법부터 알아볼게요.


  제주시 중학교 입학추첨관리위원회에서 시작 수간격 수를 지정한 뒤 컴퓨터 추첨을 통해 배정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H중학교의 정원이 5명인데, A, B, C 초등학교에서 총 9명의 학생들이 1 지망으로 H중학교를 지원을 했다고 가정해 볼게요.

  먼저 학교 번호와 학생 번호를 순서대로 나열합니다. 2023년도 입학 추첨 시스템에서 H중학교의 시작 수는 2, 간격 수는 4라고 한다면 2번 지원자(A초등학교 2번)가 H중학교 1 지망에 배정이 됩니다. 그다음부터는 간격 수 4에 해당되는 6번 지원자(B초등학교 3번)가 1 지망에 배정되고요. 계속해서 4번째 해당되는 학생들이 H중학교의 정원에 찰 때까지 1 지망으로 배정됩니다.


  여기서 여름이처럼 H중학교(과밀)와 N중학교(과밀) 사이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죠. 왜냐하면 이미 1 지망에서 지원자의 수가 정원을 넘어서는 학교는 2 지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1 지망 학교에서 떨어질 경우 안전하게 입학할 수 있는 중학교를 2 지망에 적는 것이 훨씬 눈치 있는  전략이거든요. 하지면 기회비용이라는 단어는 꼭 뭔가 둘 다 가지고 싶을 때 떠오르는 단어더라고요. 담임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하는데 열 걸음 더 먼 N중학교를 버리는 카드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요. 정녕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는 없는 건가요?


  또 하나, 여기에도 변수가 존재합니다. 우선 배정 대상자가 있다는 것이지요. 우선 배정 대상자는 체육특기자, 지체부자유 및 난치병 학생, 특수교육대상자, 교육지원대상자 그리고 다자녀 지원 대상자입니다. 현재 제주시의 18세 미만의 다자녀는 3자녀 이상입니다. 담임 선생님께 살짝 여쭤보고 다른 학교의 상황도 슬쩍 알아보니 한 반에 우선 배정 대상자가 적게는 8명, 많게는 10명 정도가 있다고 해요. 추첨 배정은 우선 배정 대상자를 먼저 배정 후 일반 배정 순이니 제주에서 집 앞에 있는 중학교를 보내는 일은 이렇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지원서를 새로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결과는 겨울 방학을 앞둔 12월 29일 11시(시간까지 엄격하죠?)에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배정통지서를 나눠주면 확인할 수 있어요. 오늘까지 마감이라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어요. 이왕이면 집 앞에 있는 1 지망 중학교에서 운 좋게 붙으면 좋겠어요. 두 달 뒤에는 던진 주사위가 결과를 알려 주겠죠?  



  

  결국 중학교 지원서를 두 번 작성한 '눈치' 작전이라는 단어부터 부담스러운 사람입니다. 

  우리 여름이는 눈치가 조금 자란 것이 뿌듯해서 쓴 눈치 속성 과외 (brunch.co.kr) 글이 조금 숨기고 싶어 지네요. 

  "엄마도 아직 못 키웠단다. '눈' 크게 뜨고 '치'밀하게 전략을 짜는 방법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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