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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런 삶

무력감

돈! 인정

by 혼란스러워

변함없이 월요일이 왔다. 지하철 타고 출근해서 회의 후 일을 시작한다. 이렇게 출근해서 일하고 점심 먹고 또 일하고 시간 되면 퇴근하는 생활이 벌써 이십 년이다. 모두 돈 때문이다. 당연하다. 돈이 없으면 살수 없으니까. 돈 버는 재주도 없고 의지도 없이 세월 흐르는 대로 살다 보니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중년이 됐다. 정신 차리고 보니 주변 사람들 아파트 하나씩은 갖고 있다.


신문 기사엔 매일 하늘을 뚫을 듯 올라간 서울 아파트값 이야기가 가득하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되버렸다.. 어릴 땐 돈이 이렇게 중요한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돈을 치열하게 벌어본 적이 없었고 크게 돈 들어갈 일 없이 살았으니 돈에 대해 깊이 생각할 일도 많지 않았다. 없으면 덜 쓰면 그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마당이 있는 집이 있었고, 한 해 농사를 지으면 먹을 것이 나왔다. 대학에 갔고 졸업하면 어떻게든 먹고는 살겠거니 생각했다. 나이에 따라 그럭저럭 살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어 살다 보니 사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돈 이란 놈이 내 영혼을 이리도 갉아먹을 줄은 몰랐다. 돈 앞에 무릎 꿇었다. 돈이 중요하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돈 보다 소중한 무엇이 있다고, 돈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돈 많이 벌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모든 것의 전제는 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돈의 노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 아파트값 앞에선 감히 돈이 무어냐고 떠들 수 없었다. 돈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없이 직장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돈 보다 소중한 무엇이 있다고 떠들 수 없었다. 이제라도 미친 듯이 독하게 살아야 하나. 투잡, 쓰리잡을 뛰어야 하나. 주말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아끼고 성실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려나.


남들과 비교하는 생각을 버리면 마음이 편해지려나. 여전히 돈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죽으면 다 소용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이번 생은 글러먹은 것인가. 내 생각을 고쳐먹는 것만으로는 치유하기 어려운 무력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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