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아무 생각 없다고 느끼면서 사실은 꽤 많은 것을 생각한다. 오늘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은지.
그 판단들은 너무 빠르게 이루어져서 우리는 그것을 생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옷장 앞에서 보내는 몇 분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편집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대부분 의식하지 않은 채로 매일 반복한다.
옷의 시작은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
추위를 막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살갗을 지키고,
그리고 수치심을 가리는 것.
인류가 옷을 입기 시작한 이유로 거론되는 것들은 대부분 이 세 가지 안에 있다. 생존과 보호와 부끄러움.
그 세 가지는 모두 몸에서 출발한 감각이었다.
춥다, 위험하다, 보이고 싶지 않다.
옷은 그 감각들에 응답하기 위해 존재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매일 아침 옷장 앞에서 하는 고민은 그것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춥지 않은 날에도 우리는 오래 고민한다.
위험하지 않은 자리에서도 무엇을 걸칠지를 계산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입기 시작했을 옷이 이제는 종종 새로운 수치심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옷을 입었느냐가 판단의 근거가 되고, 무엇을 입지 않았느냐가 결핍처럼 읽히는 세계에서 옷은 부끄러움을 덮는 물건에서 부끄러움을 생산하는 물건으로 조용히 바뀌었다.
옷이 언어가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 우리가 입는 옷은 대부분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 오늘 이 자리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옷은 말을 꺼내기 이전에 이미 그것들을 먼저 전달한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옷을 고를 때, 사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번역하는 작업을 한다. 어떤 언어로 자신을 소개할 것인지를, 말보다 먼저 결정하는 것이다. 제복이 그토록 강력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제복은 개인의 번역을 허용하지 않는다. 입는 순간 그 사람은 직업이 되고, 역할이 되고, 소속이 된다.
우리가 사복을 입을 때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제복이 조금 더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일 뿐이다.
옷을 고르는 일이 피로해지는 순간이 있다.
특별히 중요한 자리가 아닌데도 옷장 앞에서 오래 머무는 날, 혹은 입고 나간 옷이 하루 종일 마음에 걸리는 날.
그럴 때 우리는 옷을 고른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자신을 어떻게 제출할지를 고민한 것이다. 그 고민이 쌓이면, 옷은 더 이상 아침의 가벼운 의례가 아니라 작은 부담이 된다.
어떤 날은 그냥 아무것도 결정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어떻게 보일 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날,
자신을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는지를 막연히 상상하면서, 옷의 첫 단추를 잠근다.
옷을 입는 행위가 이토록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면,
옷을 입지 않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순히 잠자리에 드는 일이나 샤워를 위한 준비가 아닌
타인 앞에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옷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감각이 어떤 것인지 나는 결국 한 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