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Than Fictions_두부예찬

두부

by 식충

늦은 귀가로 피곤하고 출출한데 요깃거리가 마땅잖다. 별 기대 없이 냉장고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는데 구석 한편에 있는 두부 한 모와 눈이 마주친다. 아, 그래.... 그가 있었다. 마치 더그아웃에 앉아 언제라도 등판할 준비가 되어있는 구원투수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 묵묵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나의 사인에 그는 조용히 일어섰고 김치볶음이 깔린 마운드에 올라선다.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호투, 무실점 마무리.


장을 보다가 두부가 눈에 들어오면 일단 집어 들게 된다. 여차하면 무엇에든 써먹을 수 있고 맛도 있으면서 저렴하기까지 한 만능 재료를 두고 굳이 계획이나 필요를 따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러 가지 탕과 찌개에서 핵심 요원이며 부침, 조림, 찜 같은 분야야 말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만사 귀찮을 때에는 그냥 바로 먹을 수도 있는 데다가 늦은 밤에도 죄의식 없이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주방의 상비군. 설사 주인공이 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역할을 온전히 해낼 수 있는 것은 그의 본성이 그를 세는 단위와 다르게 모나지 않았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순하고 선하기 때문이리라.


두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클리셰가 있다. 오랜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 정문을 나서는 주인공에게 누군가 다가와 내미는 두부 한 모. 나는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볼 때마다 그 유래가 늘 궁금했다. 왜 저 상황에서 하필 두부인가. 저 것은 보신을 위한 걸까? 혹은 위로? 아니면 부적? 인터넷을 뒤져봐도 명쾌한 답변은 얻을 수 없었다. 나중에 한 소설가의 산문집에 기술된 적절한 추론을 발견하고 그때에서야 조용히 의문을 거두었다. 하긴.... 두부의 됨됨이를 생각하건데 그것이 정서적인 것이든, 영양학적인 것이든 뭐든 간에 만감이 교차할 그 상황을 수습할 들러리로 이 보다 마땅한 존재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문득, 도마 위에서 수도승 마냥 네모 반듯이 정좌한 두부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교도소 출구를 막 나온 남편에게 하얀 생두부를 건네는 아내의 마음.

그것을 받아 덥석 베어무는 남편의 마음.

그리고 두부의 마음.



P.S

두부의 MBTI는 ISFP일 것이다. 아마도.




20250909

食蟲



내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것은 옥살이하는 그도 재판받는 그도 아닌, 한모의 두부를 향해 고개 숙인 그, 입술 주변에 허연 두부파편을 붙인, 적나라하게 초라해진 그였다. 출옥한 사람에게 제일 먼저 두부를 먹이는 풍습이 언제부터 비롯되었고 무슨 뜻이 있는지 정확한 건 잘 모르지만 일제시대에도 그런 풍습은 있었고, 독립운동하다 옥살이한 분한테나 도둑질하다 징역살이한 이한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왔다. 징역살이를 속된 말로 ‘콩밥 먹는다’ 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출옥한 이에게 두부를 먹이는 까닭을 알 것도 같다. 두부는 콩으로부터 풀려난 상태이나 다시는 콩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두부는 다시는 옥살이하지 말란 당부나 염원쯤 되지 않을까.

- 박완서, 산문집《두부》中



박완서_두부 (2002)







keyword
작가의 이전글More Than Fictions_XY=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