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따뜻한 미소에 대한 그의 개인적 존경의 지문이 담긴 편지와 함께 와 준, 그렇게 장군의 의연한 죽음이 맥놀이로 남아 내 가슴 밑바닥에 있었던 또 하나 계절이 가고 있었어요. 그 계절 끝, 2015년 입춘, 그가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소식을 주었답니다.
- 소년 시절 나는 그분을 많이 존경했다.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으로부터 그분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라면 모두 그러했을 것이다. 아마 광주의 대학교로 복학하고 난 무렵이라 기억된다. 그 무렵 그분이 총알을 한 발 남긴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던 나날이 있었어.
...이 마지막 한 발은 남긴다. 내 목적하는 바가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이여 반드시 독립하여 국권을 회복하라. 내 죽어 천국에 가서라도 필히 대한제국 만세를 외치리라...
- 그분이 목적하는 바가 끝나지 않았기에 남겼다는 총알 한 발은 학교 복학 후 삼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또렷하다. 작년 그분에 대한 생각이 글로 써졌을 때 나는 이제 시드니에서의 생활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다가 세상의 바람결에 몰려다니는 세월이었다. 많은 것을 잃어버릴 만큼의 세월이었다. 혹은 잃어버릴 무엇도 없는 세월이었다.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인생이었고, 혹은 특별한 누가 겪을 수 있는 삶일 수도 있었다. 그저 그런 삶 속에서 그분을 생각해 보았던 것도 특별함은 아니었다. 다만 그분과 내가 한반도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은 특별함이었다. 그 특별함이 그분에 대한 글을 쓰게 했다. 그분에 대한 글을 쓰면서 차분하게 잠겨져 오는 조국도 그랬다. 조국을 생각하자 조국은 잃어버릴 만큼의 세월처럼 혹은 잃어버릴 무엇도 없는 세월처럼 그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조국은 뿌리들이 꽃을 피우는 화려강산이었다. 특별히 좋은 환경이 아닌 곳에서도 촘촘하게 뿌리를 내려 생육하는 뿌리들은 각자가 하나씩 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한반도에서. 나도 그곳을 가고 싶어졌다.
마침내 시드니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그의 소식이었죠.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 남겼다는 총알 한 발이 아직까지 그에게 또렷하게 남아있다는 소식과 함께.
나는 광주 우다방 앞 그 겨울비 내리는, 삼십 년도 넘은 그 밤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요. 그때 나는 갓 스물한 살이었고, 그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죠. 우리 둘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그 겨울비를 맞고 있었고요. 그가 보내온 소식은 내 심장을 쿵쿵거리게 만들었죠. 오십을 넘었는데도 내 마음은 어쩐지 소녀처럼 홍조가 오르는 듯했답니다. 그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떠났던 이곳에 그가 온다는 명증함 때문이었죠. 오직 단 몇 번의 소식만을 주었을 뿐인 삼십 년, 그 삼십 년을 넘는 시간이 흘러가 버렸죠.
어느 때부터였을까요. 청바지를 좋아하고 시인 김수영과 프랑스 저항시인 폴 엘뤼아르를 좋아하는 것처럼 가끔은 아주 가끔은, 하얀 목련꽃이 지는 그늘 아래서 양희은이 부르는 노래를 좋아했던 소녀였어요. 힘들고 미래가 투명하지 않았던 내 시절이었지만 그때 생각나는 그 사람이 내 사랑으로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기도 했죠. 그것을 부끄럽게 마음 깊은 곳에 접어둔 소녀였어요. 그 소녀를 다시 돌이킬 수 없겠지만, 어쩐지 그 소녀가 다시 되고 싶어 졌답니다.
- 나는 그분이 남긴 총알 한 발이 왜 이토록 또렷하게 남아있었을까 되뇌어보았다. 그분에 대한 글을 쓰는 동안 목적하는 바가 다 끝나지 않았다는 그분의 의지를 나는 글을 새기는 심정으로 썼다. 헌데도 무엇인가를 빠뜨리는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몰랐다. 그러다가 그분과 내가 한반도에서 태어났다는 그 특별함을 의식했을 때 갑자기 빠뜨린 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분의 사진을 보았다. 러시아헌병들에게 포박당한 당시의 낡은 사진은 외투의 세 번째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었고, 그분은 여전히 의연한 태도로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랬다. 그분은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 남겨 주었던 것이다. 총알 한 발을 남김으로써 우리 모두의 정신에, 우리 모두의 영혼에, 남겨주었다. 그것은 우리 조국의 완전한 독립인 자주평화통일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바라는 세계평화였던 것이다. 나는 목울대가 잠겨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