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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Jan 12. 2024

사물과 말

제2장 에포케: 세속화된 언어의 멈춤 

사물과 말



무엇을 쓸지 그 윤곽을 잡고 시-놉시스까지 작성했다면, 바로 첫 문장을 쓰는 게 좋다. 하지만, 그 전에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는 내적 동력에 대해서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동력이란 대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하나는 시인의 상상력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 스스로가 말하는 힘이다전자는 대상에서 촉발된 이미지 혹은 사건을 취합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낯설고 새로운 ‘그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라면, 후자는 이러한 시인의 상상력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물의 힘이다. 


예술은 상상력의 소산이고 시인은 그 상상력을 통해 작품에 대한 전권을 휘두르는 막강한 존재지만, 이러한 인식은 르네상스부터 부각된 그리고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 ‘천재’라는 개념과 연동된 근대적 개념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종 한계이며, 신과의 접점을 이루는 ‘천재’의 등장으로 상상력은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시인도 언어를 정교하고 섬세하게 다루는 ‘장인’에서 언어를 한계를 정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예외적 인간이 된다. 시인의 상상력은 인식의 불가해한 확장인 것이다.


시인에게 이러한 상상력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그가 하고자 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상상력은 생래적이면서도 후천적이다. 우리는 유년기의 빛나는 상상력이 커가면서 시드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꾸지 않으면 말라버린다. 하지만 이 말을 되돌리면, 상상력이란 훈련을 통해 개화될 수도 있다는 뜻을 가진다. 나는 거리를 지날 때 내가 상대방을 보는 것처럼, 상대방이 나를 본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지 자주 상상한다. 버스 안에서도, 자전거를 타면서도 그런 상상을 한다. 때로는 고양이의 눈으로, 강아지의 귀로 세상을 보고 듣는다. 허튼소리가 아니다. 솔직히 효과가 있다. 묘사할 때는 특히나. 


게다가 그 대상을 오래도록 끈질기게 응시하고, 다가가다 보면, 어느 순간 대상이 자신을 열 때가 있다. 오감을 넘어서는 감각들의 집체도 느껴지는 것. 나는 묵묵히 그 풍경 안에 있으면서, 대상이 쏟아내는 말을 모조리 기록하는 것이다. 대상의 말을 들을 때, 시인의 상상력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밤나무는 밤의 말을, 

살구나무는 살구의 말을 측백나무는 

측백나무대로 서로 엉키어 서서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쏟아낼까      

흰 눈 흩날리는 벚나무의 말은 무엇일까 

나무의 결을 따라 비탈을 달리던 구름의 굵은 땀방울, 

두런두런 바람을 나누던 남국의 온기일까      

저 나무를 펼치면 

켜켜이 쌓아둔 이름들이 쏟아질까      

다 쏟아졌어도 

우리가 아직 듣지 못한 나무의 말들이 

울컥울컥 밀려나올까 

─ 박성현, 「저 나무를 펼치면」 부분     



대상의 쏟아내는 말은, 나와 타자의 교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니, 교감을 통해서만 우리는 대상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나의 상상력이 주어를 잃지 않으려면, 그 길밖에 없다. 타자와의 교감, 상응, 소통 말이다. 밤나무는 ‘밤의 말’을 하고, 살구나무는 ‘살구의 말’을 하며, 측백나무는 “측백나무대로 서로 엉키어 서서 /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쏟아낼 때, 대상은 ‘시’로서 열린다.    

  

                                                            *     


사물의 말을 듣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사물은 말을 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침묵이 어울린다’고 말하기에도 난감하다. 사물은 단지 ‘사물’이다. 그것은 항상 거기에 있음으로써 역할과 쓸모를 충족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사물은 도구이며 기술에 종속된 익명의 타자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물은 인간의 손이 닿는 순간, 어둠을 벗어던지며 인간의 손을 잡는다. 과장하면 제2의 자아다. 목수에게 망치와 톱이 그러한 것처럼, 사물은 어느 순간 ‘나’의 인격을 부여받는다. 특히 시에서 사물은 시인과 세계를 잇는 ‘과도’(過渡)다. 세계는 사물 속에 자기 자신을 새겨넣고, 시인은 사물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한다. 때문에 ‘사물의 말’은 수사를 넘어서며, 시인의 자기 인식으로 확장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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