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혹은 언어의 내적 구조

제3장 시와 기억

by 박성현

통상 우리는 언어의 용법을 크게 ‘지시’와 ‘함축’으로 나눈다. 지시적 용법은 기호와 지시대상의 끈끈한 결속을 전제로 하며 주로 일상어에서 다뤄진다. 식당 메뉴판에 인쇄되어 있는 ‘고등어구이’와 같다. 반면 함축적 용법은 지시대상과의 느슨한 연결고리를 가지며 언어의 구조적 특수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냐와 흰 당나귀」의 한 구절,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에서 ‘가난’은 글자 그대로의 가난이라기보다는 심리적 가난, 정서적 결핍 혹은 우울에 해당하고, ‘나타샤’는 특정한 인물에서 연인이라는 보편성을 띠면서 독자 자신에게 고유한 사람으로 안착된다. ‘눈’은 오염되지 않은 순수성의 상징이 된다. 아무리 함축이라 해도 지시적 의미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1) 이 길을 따라 100m 정도 직진하면 문화회관이 나옵니다. 서두르세요.


(2)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위 문장 중 (1)은 길을 묻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의 대화 중 일부다. 여기에 쓰인 문장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며, 이해가 문제일 뿐 번쩍이는 깨달음이나 복잡한 해석이 수반될 필요가 없다. 다른 의미를 파생하지 않는바, 만일 다른 의미가 끼어들 여지가 생긴다면, 두 사람의 대화는 해석에 해석이 더해져서 결국에는 불가능해진다.

(2)는 김춘수 시인의 시 「나의 하나님은」의 한 구절이다. 하나님을 늙은 비애로,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으로 은유하고 있는데, 성(聖)을 종교적이고 거룩한 어떤 것이 아닌 우리가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사물들로 표현하고 있다. 일상어의 체계와는 다르게 김춘수 시인만의 독자적인 기호 체계를 가진다. 무척 독특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이 작품에서 ‘하나님’에 부여된 관습적 의미는 깨지고, 속(俗)으로서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이 문장들의 뜻을 보다 깊이 있게 펼치기 위해서는 ‘구조’와 ‘문맥’을 살펴보고, 때로는 여러 지식을 참고할 필요도 있다. 가령 ‘하나님’도 전혀 다르게 읽을 수 있다. 신 혹은 절대자에서 부성애(父性愛)를 가진 자 혹은 연인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문장을 읽고, 이해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기까지 그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함축의 구조에서 지시대상은 기호의 중력장을 일탈하며 끊임없이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가 어떻게 가능할까. 언어의 내적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일반적이면서도, 특수한 체계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소쉬르는 『일반언어학 강의』를 통해 언어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어떤 힘으로든 파괴되지 않는다. 그는 주장한다. “언어ㅍ기호가 결합시키는 것은 한 사물과 한 영상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과 하나의 청각영상이다.”32) 여기서 개념은 의미, 청각영상은 의미를 구현하는 기호적 측면이다. 예컨대, ‘나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이때 우리는 그 단어의 청각적 영상과 함께 구체적인 개념-이미지를 동시에 불러온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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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언어의 구조에서 개념(의미적 측면)과 청각영상(기호적 측면)은 언어에 내재한 근본 뼈대다. 그 어떤 언어도 이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앞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일상어에서는 이 두 영역이 상당히 밀착해 있다. 만일 ‘개’라는 단어를 듣고 말이나 사자, 호랑이를 떠올린다면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또한 광고에서는 양자의 결합이 한치의 오차가 없도록 설계된다.

반면 시의 언어는 두 영역이 거의 분리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느슨하다. 김춘수 시인의 「나의 하나님은」에서, ‘하나님’은 ‘비애’이고,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관습적 의미망에 종속되지 않으며, 아예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뿌리를 뽑아버릴 때도 있다. 시의 언어는 방사형의 놀라운 확장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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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에서 나무는 ‘우정’과 ‘희생’으로 확장되며, 독자에 따라서 ‘고향’이나 ‘어머니’ 혹은 ‘풍요’ 등으로 미끄러진다. 여기서 우리는 시의 언어가 가진 예술성의 중추를 확인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매듭 없는 의미의 무한-이어짐이다. 물론 때에 따라서 의미 확장 폭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 강렬하게 작용하거나 문학을 인간에 복무하는 도구로서 간주하는 특수한 경우에 해당된다.

좀 더 자주 쓰는 용어로 바꿔보자. ‘개념’은 ‘시이피에’(signfiet, 통상 소문자 s)나 ‘기의’로, ‘청각영상’은 ‘시니피앙’(signifiant, 대문자 S) 혹은 ‘기표’가 된다.33) 이 용어들은 시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첫째, 기표와 기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서 우리에게 작용한다. 둘째, 일상어와 과학어, 광고어 등에서처럼 일반적으로 기표와 기의는 동일하다. 셋째, 시의 언어에서는 다른 양상이 전개된다. 기표와 기의가 점차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정, 희생 등으로 미끄러지는 나무의 확장성: 시의 언어는 계속 새로운 의미를 파생한다. 결국 일상어의 특수한 사용이란 기표와 기의의 밀착을 끊어버리는, 그래서 의미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도록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시의 언어는 기표와 기의의 결속을 균열시킴으로써 언어 예술로서 고양된다. 이것이 새로운 의미생산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고찰⑪] 시의 언어는 기표와 기의의 내적 결속을 끊어버림으로써 언어 예술로 고양된다.




32) 페르디낭 드 소쉬르, 최승언 옮김, 『일반언어학 강의』, 민음사, 1990, 84쪽.

33) 소쉬르의 공식에 따르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는 [s/S]이다. 하지만 구조주의 철학을 거치면서 기표가 강조되어 [S/s]로 변형된다. 소제목도 이러한 경향이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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