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언어가 있다

제3장 시와 기억

by 박성현

시가 존재하는 한, 시의 언어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소리가 없는데 작곡이 가능할 리 없으며, 색이 없는데 그림이 실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는 언어로서 시인의 내면에서 튀어나와 세계 속에 객관화된다. 이것이 시를 시로 규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제다. 다만, 작곡을 위한 음이 화성으로 존재하고, 색상의 배치가 인간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발달한 것과는 달리, 어떤 ‘언어’가 예술에 적합하고, 또한 시로서 가능한지에 대한 확정된 규준은 없다.

다만, 언어가 있을 뿐이다. 언어가 있고 그것은 시라는 특수한 시스템을 관통하며 ‘시의 언어’라는, 비가시적 존재의 심연에 닿는다. 모든 언어는 사물을 둘러싼 채로, 사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럼으로써 자유로워진다. 때문에 언어는 공감각적이다. 시각과 함께 후각을 불러오고 그 ‘후각’은 청각을 통해 완성된다. 언어는 우리에게 귀를 기울인다. 언어는 우리의 목소리와 심장 박동을 듣는다. 그 속에 깃든, 태초부터 이어져 온 유전자가 발화(發話)를 통해 부화된다. 홀로, 따로 떨어져 고독에 완전히 침잠하는 언어란 없다.

실비 제르맹은 체코의 시인 블라디미르 홀란을 인용하면서 소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를 전개한다. 제르맹이 소환한 홀란의 문장은 이렇다: “사람들에게, 유령들에게, 동물에게, 사물에게 / 완전히 버림받은 사람도, 심지어 혼자 말하는 사람도 / 오로지 혼자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28) 그리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어나간다: “그건 마치 물소리와도 같은 것, 그렇지만 아주 가늘고 미세한 물소리 같은 것이었다. 땅속의 샘물, 심연 속 깊숙이 어둑하고 차가운 곳에 고여 있는 물이 바로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다. 수천 년 묵은 바위틈에서 새어나와 침묵과 공허의 광대함 속에서 기이한 울림을 펼쳐놓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 말이다.”29)

언어 속에서 인간은 혼자가 아니다. 육신은 고독과 침묵의 신전에 속박되어 있을지라도, 언어는 그들을 감싸고 생각하게 하며 꿈을 꾸게 한다. 언어는 인간의 미래를, 그들의 몰입과 집중을 통해 이끌어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처럼, 도처에 스며들며 인간의 시간을 반죽하고 형상을 만들어낸다. 반드시 멀리 가서 다른 언어와 합쳐진다. 마치 물웅덩이가 흘러 냇물이 되고, 강에 닿는 것처럼.

따라서 “어쩌면 우리의 세계는 잉크의 목소리, 숨결, 속삭임으로, 발소리들로─우리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귀에 들리지 않는 중얼거림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그것들은 공기 속에 어디에나 있다. 우리들이 숨쉬는 공기 속에 떠 있으면서도 아주 가느다란 광선에 비칠 때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먼지처럼 그 중얼거리는 소리는 항상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나직한 소음의 한복판에서 아주 약간 침묵이 깃드는 순간에야 비로소 흐릿하게, 잠시 지각되는 것이다.”30)


당신의 살냄새 같은 앵두꽃을 데려가는 바람의 뒤에 서서 나는 비가 오길 기다린다. 한때 그것은 내 몸을 살다 간 구름의 입자들. 불의 이마를 닮은 짐승처럼 바람이 불어 간 방향으로 떠나갈 것들. 빗방울이 맨살에 떨어진다. 스미듯 집의 불빛이 꺼졌다. 앵두꽃이 진 자리마다 물고기들이 꼬리를 감추며 나무 속으로 사라졌다. 허기가 들끓는 지상에서 상처 난 짐승들이 제 눈을 파내려는 듯 자주 울었고, 핏물이 배어나오는 그리움으로 버텼다는 기별. 다시 앵두꽃은 피겠지.

─ 이승희, 「비를 맞는 저녁」 부분31)


시는 앵두꽃을 바라보는 혹은 어루만지는 시인의 손끝에서 시작한다. 적어도 그에게 꽃 피는 봄날이란 기억의 아득함이고 곁이다. 그 기억을 펼치며 소슬하니 차가운 ‘앵두꽃’이 피었다. 앵두꽃은 피어서 투명하고 4월은 온통 백색이다. 시인은 손끝을 가만히 기울이며 백색의 더미를 쫓는다. 백색은 간결한 침묵이다. 고독과 망각의 단단한 결속 혹은 눈이 가파르게 쌓인 나뭇가지처럼 위태로운 부재다. 앵두꽃은 낮고 가냘프고 느슨하지만, 그 때문에 일회적이고 고유하며 비가시적일 수밖에 없다. 앵두꽃의 백색, 그것은 매혹 그 자체 혹은 ‘발화된 구름’의 서늘한 언어일지 모른다.

그때 시인은 좀 더 몸을 기울여 앵두꽃의 속살에 잠긴 햇살들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물수제비처럼, 볕의 수면에 몇 개의 파장이 일고, 사라지거나 다시 떠오르는데, 그 솟아오르는 힘만큼은 놀랍도록 가볍고 날카로웠다. 어쩌면 ‘간질인다’는 은밀한 동사가 적절하겠지만, 그는 금기를 어루만지는 듯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앵두꽃이 흔들리고, 볕과 손이 흩어졌으며 냄새는 아주 멀리까지 밀려갔다. 앵두나무를 휘감고 도는 바람이, 햇살에 닿는 백색의 아찔한 힘으로 그의 손가락을 휘감았다. 바람은 부드럽고 완만하며 뚜렷하지만, 바람이 몰고 오는 저 구름은 무겁고 장중하다. 그가 고백한 것처럼 “한때 그것은 내 몸을 살다 간 구름의 입자들” 혹은 “불의 이마를 닮은 짐승처럼 바람이 불어 간 방향으로 떠나갈 것들”이 아닐까. 당신의 환청 같은 백일몽을 붙잡으며 더욱 깊은 기억 속으로 스며든다.

시인에게, 시의 언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일상어라는 모든 언어들이 교차하는 거대한 생활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그 자그마한 모퉁이에서 투명하고 밝게 빛난다. 이승희 시인에게도 시의 언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일상어를 융해하여 시의 언어를 축성한다. 시의 언어는 순간이라는 시간의 물질화에 충실하며 또한 인간의 고유한 감각과 사유에 펼쳐진 세계에 몰입한다. 그러나 시의 언어는 그 열화를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휘발한다. 이것이 시의 언어가 ‘시’라는 한시적이고 특수한 장소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언어는 인간의 감정과 사유에 개성과 영혼을 부여하고,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시는 언어에 작용한다.


[고찰⑦] 시의 언어는 다만, 시라는 특수한 시스템에서만 발화되고 사라진다.




28) 실비 제르맹, 김화영 옮김,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문학동네, 2006, 32쪽.

29) 실비 제르맹, 위의 책, 34쪽.

30) 실비 제르맹, 위의 책, 45~46쪽.

31) 이승희,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문학동네, 2012.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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