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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Jul 16. 2022

도루묵

환목어(還目魚)

2022년 7월 15일 금요일


핸드폰은 여러 편리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실시간 검색은 내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정말 내 머릿속이 궁금하다. 어떤 회로를 거쳐서 생뚱맞은 질문이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는 건지 그 이유와 과정이 모두 궁금하다. 나에게는 방대한 잠재의식이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책 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순간,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책의 구절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뇌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궁금증도 많고, 말도 많고, 생각도 많았던 걸 보면,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을 확률도 상당히 높다.  


나는 초등학교까지 한국에서 졸업했고, 그 이후부터는 계속 외국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외국어를 사용해온 시간이 모국어만 사용했던 시간보다 세 배 더 길다. 그래서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 날에는 정확한 맞춤법을 확인하고 싶어 져서 바로 검색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호기심을 노크한 단어는 '도루묵'이었는데, "과연 이 '도루묵'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그러자 '도루묵'과 '도로묵'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 철자법 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실시간 검색을 가능하게 해 준 핸드폰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도루목이 '환목어(還目魚)'라는 한자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배웠고, 더 나아가 조선시대 이식(李植)이라는 문신이 택당집(澤堂集)에 '도루묵'에 대한 시를 남겼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의 작품은 스토리텔링의 매력까지 가지고 있다. 시인의 풍자적 묘사와 더불어 서슬 퍼런 본질에 대한 통찰력이 빛나는 이 시를 읽고 있으면, 결국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끌어당김이 있다. 인조가 왜 이식(李植)을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이조판서에 까지 세웠는지 충분히 납득하게 만드는 필력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목어가 되어버린 환목어(還目魚) 일가 대대손손의 번영을 빈다.  


환목어(還目魚) 

 

有魚名曰目

목어라 부르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海族題品卑

해산물 가운데서 품질이 낮은 거라 

膏腴不自潤

번지르르 기름진 고기도 아닌 데다 

形質本非奇

그 모양새도 볼 만한 게 없었다네. 

終然風味淡

그래도 씹어 보면 그 맛이 담박하여 

亦足佐冬釃

겨울철 술안주론 그런대로 괜찮았지. 


國君昔播越

전에 임금님이 난리 피해 오시어서 

艱荒此海郵

이 해변에서 고초를 겪으실 때 

目也適登盤

목어가 마침 수라상에 올라와서 

頓頓療晩飢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해 드렸지.

勅賜銀魚號 

그러자 은어라 이름을 하사하고

永充壤奠儀

길이 특산물로 바치게 하셨다네.


金輿旣旋反

난리 끝나 임금님이 서울로 돌아온 뒤 

玉饌競珍脂

수라상에 진수성찬 서로들 뽐낼 적에 

嗟汝厠其間

불쌍한 이 고기도 그 사이에 끼었는데 

詎敢當一匙

맛보시는 은총을 한 번도 못 받았네. 

削號還爲目

이름이 삭탈되어 도로 목어로 떨어져서 

斯須忽如遺

순식간에 버린 물건 푸대접을 당했다네. 


賢愚不在己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 

貴賤各乘時

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 

名稱是外飾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 

委棄非汝疵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이 아니라네. 

洋洋碧海底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 

自適乃其宜    

거침없이 노니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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