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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Sep 09. 2022

감정의 노안

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

2022년 9월 8일 목요일


몇 년 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Lori Gottlieb (1966-)의 <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이라는 책이 있다. 한국에서는 <마음을 치료하는 법: 심리 치료사와 그녀의 심리 치료사, 우리를 더 나은 우리로 이끄는 마음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 논픽션의 작가이자 주인공인 심리치료사 로리는 어떤 계기로 심리치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웬델이라는 심리치료사를 만나 치료를 시작한다. 로리는 웬델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심리치료가 심화되어 가는 과정을 독자에게 쉬운 언어와 친숙한 화법으로 전달해 준다. 또한 그녀는 웬델과 치료적 관계를 맺게 되면서 체험하게 되는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글로 풀어냄과 동시에, 상담실을 찾는 내담자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흥미와 관심을 끝까지 유지시켜 준다. 로리의 이야기에는 신념의 상실과 예리한 통찰, 관계의 불확실성과 끈끈함, 변화에 대한 저항과 수용이 함께 담겨 있다. 한국어 번역본을 읽지 않아서 그 느낌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영문본에는 작가만이 지닌 편안한 스토리 텔링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처음으로 '감정의 노안'이라는 표현을 접했다. 




‘삶의 본질은 변화이고 사람들의 본질은 변화에 저항하는 것’이라던 웬델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어디선가 읽었던 구절이라면서, 거의 모든 삶의 고비에 적용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나 심리 치료사로서도 감명 깊은 구절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기 전날 나는 안과에서 노안이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노안은 사십 대에 접어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원시가 되고, 뭐든 또렷이 보려면 멀찍이 떨어뜨려놓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 나이대에선 감정에도 노안이 오는 건지 모른다. 더 큰 그림을 보려면 멀찍이 물러서야 한다. 여전히 불평투성이더라도 지금 지닌 것을 잃게 되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 작품을 읽을 무렵 이미 내게도 노안의 초기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래서 '노안'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더욱 인상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글씨를 읽기 위해 안경이 필요했고, 결국 돋보기를 마련했다. 이제는 피아노 악보를 보려면 의자를 조금 더 멀리 놓고 앉아야 한다. 그렇게 시각의 선명도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적당한 거리감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 '감정의 노안'은 나에게 이전보다 묵직해진 중심과 보드라운 유연성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럴수록 이 신비로운 세계를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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