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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春

Albert Camus

by Rainsonata

2022년 9월 13일 화요일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기이한 호기심에 Albert Camus (1913 - 1960)의 <The Plague>를 다시 찾아 읽었다. 독서 일지를 확인해보니 카뮈의 페스트는 2020년에 읽은 마지막 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는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소설을 읽을 때 반복해서 나타나는 몇 개의 특이사항이 있다. 그중 하나가 등장인물에게는 곧바로 감정 이입이 되는 반면 그들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늘 적당한 거리감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끝까지 작품을 읽고 나면 마치 미술관에서 거대한 그림 한 편을 하루 종일 감상하고 나왔을 때와 비슷한 뒷 맛이 남는다.


느닷없이 카뮈의 이야기를 꺼내게 된 이유는, 오늘 아침 우연히 그의 고운 글귀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Autumn is a second spring when every leaf is a flower." - Albert Camus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 - 알베르 카뮈


정말 예쁜 글은 어느 언어로 읽어도 감동을 준다. 그리고 작가가 고른 한 단어 한 단어에는 글을 아끼는 마음이 스며들어있다. 가을도 좋지만 봄도 좋고, 잎도 좋지만 꽃도 좋은, 두 계절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칭찬해주는 이 글귀를 읽으며, 나는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카뮈이기에 의사 리외와 휴머니스트 타루라는 인물을 탄생시킬 수 있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우정의 상징으로 바다에 풍덩 빠져 자유로이 헤엄쳤던 계절 또한 우윳빛 달이 비추는 두 번째 봄, 가을이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매일매일 단 하나의 문장을 다듬는 조제프 그랑은 작가로서의 카뮈의 모습이 투영된 상징적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화창함과 맑음' '우아함과 아름다움' '그리고와 그래서' 사이를 방황하는 그랑은 자신의 언어를 찾기 위해 글을 쓰는 진정한 글쟁이다. 이러한 그랑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아닐까 싶다. 왜냐면 가도는 ‘이응의 그윽한 거처에 붙인다(題李凝幽居)’라는 오언율시를 짓는 도중에 퇴(推:밀다)와 고(敲:두드리다)의 어구를 놓고 고민하느냐, 한유의 행차와 부딪힌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일화에서 '퇴(推)고(敲)'가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랑에게 들려준다면 그 또한 가도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려 줄 것 같다.


이응의 유거에 대해 - 題李凝幽居/당唐 가도賈島


閑居少鄰竝 한가한 거처 곁에 이웃도 적고
草徑入荒園 수풀 길 거친 정원으로 통하네
鳥宿池邊樹 새는 못가 나무에 잠들어 있고
僧敲月下門 승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過橋分野色 다리 건너니 들판 색 구분되고
移石動雲根 바위 옮겨가니 구름도 따르네
暫去還來此 잠시 떠나가지만 다시 오리니
幽期不負言 은거의 약속 저버리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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