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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절약

미니멀리즘

by Rainsonata

2022년 9월 20일 화요일


이번 달 우리 집은 전기요금을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당월분 전기요금은 8/15-9/15까지의 전력 사용을 기준으로 하는데, 샌디에이고를 비롯한 캘리포니아는 100년 만의 무더위가 약 2주간 지속되었던 기간이었다. 어떤 지역은 갑자기 정전이 되기도 했고, 어떤 곳은 강제로 전기 사용을 제한시키기 까지 했다. 낮에는 더위로 인해 통행 차량이 거의 없었고, 매일 폭염 주의보와 특보가 번갈아가며 발령되었다. 9월 중순을 맞이하면서 혹서는 물러갔으나, 이제 캘리포니아 주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액의 전기요금 고지서다.


더위가 누그러지자 우리의 노을 산책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며칠 전 산책 중에 스톰이 깜빡할 뻔했다면서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오늘 뉴스에서 샌프란시스코 주민이 전기요금으로 약 700불 (976,122원)을 내야 한다는 인터뷰 영상을 봤어. 나이 드신 분이었는데 평생 캘리포니아에 살았지만, 이런 액수의 청구서는 처음 본다며 몹시 당혹해하시더라고. 우리도 한 달간 에어컨 사용량이 늘었으니까 이번에는 요금이 꽤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대에게 미리 알려주는 거야."


우리 집은 태양광 패널이 지붕에 설치되어 자가발전을 하는 시스템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고 남은 태양열 에너지는 샌디에이고에서 운영하는 그리드로 옮겨져서 자동으로 저장/순환된다고 알고 있다. <간소한 삶: 미니멀리즘과 에너지 절약>이라는 글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우리 집의 일일 평균 전기 사용량은 1.5 kWh 정도이며, 이것은 미국 일반 가정의 약 10%에 해당하는 소비량이다. 하지만 올여름의 더위는 에어컨 없이는 집에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심지어 폭염은 아침부터 시작해서 다음 날 새벽까지도 누그러들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에어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지난 한 달간의 일일 평균 전력소비량 또한 1.5 kWh에서 5 kWh로 급상승했다.


스톰으로부터 샌프란시스코의 700불 폭탄 전기요금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이번 달 전기요금이 도대체 얼마나 될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렇게 소식을 기다리던 중에 드디어 청구서가 도착했고, 나는 마음속으로 두둥두둥 북을 울리며 이메일을 클릭했다. "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집에 부과된 전기료는 0원이었다. 뿐만 아니라 가스요금까지 모두 면제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샌디에이고 주민들에게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SDGE 사이트에 들어가서 자초지종을 살펴보니, 고마운 소식 뒤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첫 째, SDGE에서 운영하는 Net Energy Metering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우리 집에서 남은 전력을 그리드로 보냈을 때, 이 전력이 돈으로 환산되어 정해진 기간 동안 적립금으로 자동 저장되었다가, 여름/겨울에 특히 에너지 소모가 늘어나는 시기가 오면, 그 적립금으로 전기/가스 요금을 대불 해준다고 했다. 둘째, 6월쯤 SDGE에서 다가올 여름의 전력난을 대비하여 절전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냐는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찬찬히 읽어보니 절차가 복잡하지도 않았고, 신청서만 제출하면 한 달 뒤부터 에너지 절약 실천 소비자로 등록해 준다고 해서 선뜻 서류를 작성해서 보냈는데, 이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내가 모르고 있던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SDGE 측의 설명에 의하면 샌디에이고는 전력 사용비를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시간대로 나눠서 On Peak (4pm-9pm), Off Peak (6am-4pm/9pm-12am), Super Off Peak (12am-6am) 요금을 적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등록했던 '에너지 절약 실천 프로그램' 참가자에게는 SDGE에서 절전 실행일 하루 전에 문자나 이메일로 알려주게 되어 있는데, 안내문이 제시한 대로 On Peak (4pm-9pm) 시간대에 전력 사용을 최소화하면 (예: 에어컨의 온도를 78F(26C)로 유지하기) 에너지 절약을 실천한 대가로 그만큼의 전기를 돈으로 환산해서 적립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정황을 이해한 후에야 드디어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받은 이메일의 내용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 이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에어컨을 내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78도로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안내문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든 생각은 '100년 만에 폭염이라면 정말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을 텐데, 우리라도 전기를 아껴 쓰면 병원이나 학교 같은 공공시설에 전력 공급이 더 안정적일 수 있겠구나' 하는 거였다. 그래서 혹시 시간을 잊어버릴까 봐 전화에 알람 설정을 해놓고, 오후 4시만 되면 자발적으로 에어컨의 온도를 78F로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작은 행동의 반복이 결국 우리에게 '가스/전기료 0원'이라는 서프라이즈 선물을 안겨준 장본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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