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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Oct 19. 2022

혼자 있는 시간

Caroline Knapp

2022년 10월 18일 화요일


만나본 적도 없는데 그 사람의 글을 읽은 것만으로도 애정을 갖게 되는 경우가 아주 간혹 있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만약 돌아가신 분이라면 조용히 읽던 책을 덮고 그분의 명복을 빌게 되고, 만약 생존해 계신 분이라면 남은 여생이 평안하길 바라게 되는 그런 작가 말이다. 


Caroline Knapp (1959 - 2002)도 그중 한 명이다. 그녀는 십 대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 후 20년간 알코올과 은밀한 동거를 이어간다. 물론 외부에 비친 캐롤라인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저널리스트/작가의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캐롤라인은 한 때 거식증을 앓았으며, 그녀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담배 개피 굵기의 청바지'를 입고 다녔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캐롤라인은 추수감사절 주말에 생긴 사고로 인해 알코올 중독의 심각성을 직시하게 되고, 꾸준한 심리치료와 자조모임의 도움으로 마침내 '고도 적응형 중독자'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금주에 성공한다. 술과 이별한 그녀는 반려견 루실(Lucille)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따뜻한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20대부터 피기 시작한 담배만큼은 평생 끊지 못했는데, 그녀는 폐암 진단을 받고 오랜 친구였던 Mark Morelli와 결혼한 뒤, 몇 주 후에 마지막을 숨을 거둔다. 그녀의 나이 고작 42세였다.


나는 캐롤라인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의 글은 적당히 정갈하고 세련되었으며 부담스럽지 않은 통찰력과 슬프면서도 빛나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상처 입은 치유자적 요소가 다분하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부드럽게 파고드는 마법이 있다. 그런 그녀의 작품 중에 가을볕이 좋은 오늘 같은 날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다시 꺼내 읽고 싶어 진다. 고독과 고립의 경계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캐롤라인이 친구 그레이스의 회복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이전보다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친구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성장을 느낀 일화를 읽으면, 비슷한 어려움으로 나와 치료적 관계를 맺었던 내담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들과 함께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럼 캐롤라인 냅이 제시하는 고독과 고립은 어떤 것이며 둘의 차이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고립의 목소리, 설득력 있고 음흉한 목소리다. 우리는 고립을 지리와 상황의 결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고립은 또한 마음의 상태일 수 있고, 실제로 종종 그렇다. 고립은 - 고립되고 싶은 충동은 - 두려움과 자기 보호에 관련된 일이다. 고립은 고치를 만드는 것, 매혹적으로 편한 나머지 벗어나기 어려워지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고립은 또한 음흉하다. 우울증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것은 잡초처럼 슬금슬금 자라나서 당신을 붙들고는 놓아주지 않는 마음 상태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고독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오빠, 아니면 연상의 친한 친구와 같다. 너무 잘 알기에 침묵조차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고독은 기분 좋은 메시지를 속삭이며 우리를 달랜다. 고립은 고독의 사악한 쌍둥이, 아니면 못된 친척이다. 그것은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서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고독은 평화와 고요를 키우는 일이다. 하지만 고립은 두려움에 굴복하는 일이고, 우리가 두려움에 더 많이 굴복할수록 우리를 붙잡은 그것의 손아귀 힘은 더 세진다.



그녀는 고독의 즐거움이 고립의 절망감으로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으므로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혼자 있는 시간은 얼마쯤이면 충분할까?

얼마나 많으면 지나칠까?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상태는 언제 자신을 제약하는 상태로 변할까?

당신의 경우, 고독한 행복이 언제 변질하기 시작하여 고립된 절망으로 변형되는가?

세상을 차단해버리고 싶은 충동은 언제 닥치며, 그 진정한 동기는 무엇인가?

당신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낫기 위해서인가, 숨기 위해서인가?




결국 그녀는 혼자 있는다는 것 또한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며 고독은 어려운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왜냐하면 혼자 있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수필을 썼을 당시 캐롤라인은 친구 그레이스의 치유 과정을 지켜보면서, Carolyn Gold Heilbrun (1926 - 2003)의 글과 만나게 되었고, 독서를 통해 삶의 적절한 균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 듯 보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캐롤라인이 그토록 존경했던 노년의 여류작가 캐롤린은 77세에 "The journey is over. Love to all"이라는 짧은 글을 남긴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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