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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Oct 06. 2023

우리 함께

동료 모임

2023년 10월 6일 금요일


나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정신건강 클리닉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화상으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는 심리치료에 대한 고찰과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한 내용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느끼는 변화에 대해 함께 나눈다. 대부분의 시간을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내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관심사와 화두를 놓고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상호 존중과 성장을 바탕으로 하는 동료 관계가 심리치료사에게 주는 긍정 효과에 대해 심리학자 Irvine Yalom (1931-)은 줄곧 대변해 왔다. 실제로 그는 35년 넘게 정기적으로 가져온 동료 모임을 향한 고마움을 글과 인터뷰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 온 이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다. 다행히 나에게도 그런 동료가 세 명이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경청은 심리치료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므로, 우리는 '귀'로만 아니라 '눈'과 '마음'으로도 잘 들을 수 있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직업 특성상 수많은 내담자의 개인 정보가 지켜질 수 있도록 끝까지 보호하고 꾸준히 '입'단속을 해야 한다. 물론 비밀보장원칙이 예외가 될 수 있는 긴급 상황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몹시 드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솔직히 심리치료사가 된 이후로 잡담을 경계하게 된 가장 큰 요인도 내담자로부터 알게 된 어떤 정보도 누설해서는 안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그런 직업적 배경을 고려해 봤을 때, 스스럼없이 가족의 안부를 묻고, 주변의 흥미로운 사건을 함께 나누고, 농담과 덕담을 주고받으며 웃을 수 있는 동료 관계는 옹달샘 같이 소중한 존재이다.


이번 주 모임에서 우리는 'Nostargia'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경험담을 나눴다. 시작은 '향수/그리움'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실존주의 심리치료로까지 확장되어, 앞서 말한 심리학자 얄롬의 '죽음/자유/고립/무의미함'이라는 네 가지의 실존치료의 핵심 키워드에 대한 해석을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얄롬을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때는 얄롬의 심리치료사였으며 노년에는 멘토/친구였던 심리학자 Rollo May (1909-1994)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주제가 거기까지 다다르자 우리는 메이의 임종을 지켰던 얄롬이 그 후 어떻게 '죽음 불안' (Death Anxiety)과 마주하게 되었는지도 함께 짚어보았다. 결국 모임이 끝날 무렵에는 서로의 건강과 자기 돌봄의 중요성을 상기하며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동료 모임을 마치고 나서 때마침 나는 Matt Haig (1975-)의 <The Comfort Book>을 읽게 되었는데, 우리가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 실려있었다. 처음부터 한 장씩 천천히 읽어나가다 '작은 계획'이라는 글을 만났는데, 결국 삶이라는 것은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각자의 작은 계획을 실천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간결한 글을 읽고 나니 과연 나의 인생은 어떤 작은 계획들로 채워져 있는지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음 모임에서 동료들을 만나면 같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졌다. 참고로 이 책은 한국에서 <위로의 책>으로 번역 출판 되었다. 



A Little Plan


Be curious. Go outside. Get to bed on time. Hydrate. Breathe from the diaphragm. Eat happy. Get a routine baggy enough to live in. Be kind. Accept that not everyone will like you. Appreciate those who do. Don’t be defined. Allow fuck-ups. Want what you already have. Learn to say no to things that get in the way of life. And to say yes to the things that help you live.


작은 계획


호기심을 갖자. 밖으로 나가자. 제시간에 잠자리에 들자. 물을 많이 마시자. 숨을 깊게 쉬자. 행복한 마음으로 먹자. 지킬 수 있도록 일과를 여유 있게 세우자. 친절하자.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자. 한계에 갇히지 말자. 실수를 용납하자. 이미 갖고 있는 걸 원하자. 삶을 가로막는 것들을 거절하는 법을 배우자.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은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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