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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sonata Oct 04. 2023

배움의 자세

공부와 학습

2023년 10월 3일 화요일


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수많은 이론을 만났다. 시험이 다가오면 그동안 배운 심리학자와 이론을 연대별로 정리해서 도표로 만들어 외웠고, 굵직굵직한 인물들의 이론은 빠짐없이 에세이로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그 많은 심리학자의 이론을 하나씩 파고들다 보면, 어떤 건 나의 생각과 결이 맞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몇몇의 이론은 심리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모호해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이런 유사한 경험을 다른 학생들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세미나 수업을 수강하면서 알게 되었다. 인턴쉽 준비에 큰 도움을 주신 교수님은 예비 심리치료사 개개인이 자신의 인생관을 숙지하고 있는지 점검하셨고, 각자의 가치관에 상응하는 심리학 이론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거듭 강조하셨다. 


앞으로 임상 경험 3000시간을 채워나가야 하는 제자들에게 교수님은 각자 입으면 편안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른다는 마음자세로 자신에게 맞는 심리학 이론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께서는 내담자를 대할 때 아무 이론이나 덥석 골라서 '아는 척'하거나 '할 수 있는 척'하는 건 직업윤리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훗날 심리치료사 면허를 취득하더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이어나가야 하며, 그래야만 자신이 사용하는 이론을 체화할 수 있다고 하셨다. 10년 후에 그냥 그런 심리치료사로 살고 있을지, 아니면 진심으로 내담자를 대하는 심리치료사가 되어 있을지는 각자가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열변을 토하시던 교수님의 힘찬 목소리가 지금도 등을 곧게 펴게 만든다. 배움의 길에서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학업을 대하는 태도와 직업의 지향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고마운 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배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받아 익히다' '본받아 따르다'라는 뜻이 내가 평소에 알고 있는 배움과 상통한다. 그렇다면 공부와는 어떻게 다를까? 사전에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고 적혀 있고, 한자로는 장인 공(工)에 지아비(夫)를 써서 공부(工夫)라고 표기한다. 그런데 공(工)에는 '만들어가다'라는 뜻이 있고, 부(夫)는 '집의 아비' '지성과 교양이 높은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후자대로 '공부'를 해석해 보면 집의 아비, 집의 어른, 즉 지성과 교양이 높은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뜻하며, 그것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인성 교육'과 직결된다. 영어로 'Study'는 라틴어 'Studium'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뜻은 공부 이외에도 열의(Zeal) 또는 헌신(Dedication)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논어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가 저절로 떠오른다. 공자는 배움만 아니라 그것을 익혀가는 과정을 통해 학습(學習)의 즐거움을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다시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오니, 진정한 배움의 자세란 시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하나의 마음가짐을 가리키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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