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磬
2024년 8월 30일 금요일
산 너머 가을이 여름을 마중 나오는 발기척이 들린다. 나는 그것을 바람을 통해 듣는다. 바람이 사람의 상처를 호-- 호-- 불어주기도 하고, 살며시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정신 차리라고 호통쳐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할머니를 여의고 나서 처음 깨달았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오래전부터 <수선화에게>라는 작품으로 각인되어 있는 정호승 시인의 <풍경 달다>라는 시를 알게 된 건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을 담은 영상 덕분이었다. 이 글을 읽는데 가슴이 싸해지면서 할머니를 여읜 후, 우리 집 처마 끝에 달아 놓았던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맑고 서늘한 소리를 듣는 것도 축복이었지만, 할머니와 가장 잘 어울리는 소리를 찾기 위해 정성껏 풍경을 고르는 작업도 몹시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고른 풍경을 가슴에 안고 뒤뜰로 나가 처마 끝에 달아주던 순간의 애달픔을 내 몸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후 십여 년 동안 푸르른 풍경 소리로부터 나는 깊은 위안을 얻었다. 수년간 목 매이듯 솟구치던 그리움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숨결 같은 그리움으로 변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고마운 존재였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인품을 닮은 겸손하고 여여(如如)한 풍경이었다.
<풍경 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태헌의 한역으로 재구성된 한시도 읽을수록 문향(文香)이 그윽하다.
掛風磬(괘풍경)
雲住有臥佛(운주유와불)
往謁將歸來(왕알장귀래)
君胸簷牙端(군흉첨아단)
吾掛風磬回(오괘풍경회)
風自遠處到(풍자원처도)
假使磬聲聞(가사경성문)
須知吾心子(수지오심자)
懷君自訪君(회군자방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