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2025년 3월 21일 금요일
한강 작가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다가 한 편의 시(詩)를 만나 2004년 여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났다.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2004년 7월 16일
휴.... 엄마로서의 하루가 드디어 마무리됐다. 오늘의 공식 일정, 끝! 랄라는 마침내 꿈나라로 떠났다. 그런데 우리 랄라에게는 가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새벽 2-3시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빠!" 또는 "엄마!" 하고 외치는 것이다. 처음엔 스톰도 나도 그저 잠꼬대려니 하고 모른 척 넘어가려 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사태가 더 심각해져서 혼쭐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는 날이면,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른 아이들도 이런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반가운 습관은 아니다. 특히 랄라는 꼭 자기가 지명한 사람만 고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어나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매일 밤, 우리 부부는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 오늘은 나를 부르지 않기를…” 왜냐하면 한 번 불리면, 그날 새벽잠은 끝이니까.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우리도 나름의 대응법을 마련하게 되었다.
1. 유모차 태우기 작전: 랄라를 유모차에 태우고, 평소 자장가처럼 들려주던 음악을 틀어놓은 채 밀어준다.
2. 자장자장 침대 작전: 랄라를 우리 침대로 데려와, 스톰과 내가 양쪽에서 꼭 끼고 누워 '자장자장'을 반복한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랄라가 또다시 벌떡 일어나 앉아 더 큰 목소리로 "아빠!" 또는 "엄마!"를 외치는 경우다. 나는 어떻게든 방에서 재워 보려고 애써보지만(물론 대부분 실패로 끝나지만), 스톰은 이쯤 되면 미련을 깨끗이 버린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비장의 기술을 꺼내 드는데, 이름하여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작전이다.
스톰은 랄라를 품에 안고 온 집안을 걸어 다니며 계속 묻는다. "랄라야,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그러면 랄라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부엌" "화장실" "왼쪽" "오른쪽" 랄라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스톰이 계속 이동하는 방식인데, 이건 엄청난 인내력과 팔의 힘이 필요한 기술이어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듯하다. 하지만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스톰은, 놀랍게도 이 방법으로 아주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
아마도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작전의 핵심은 랄라를 빙빙 돌게 해서 어지럽게 만든 후, 스스로 잠이 오게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톰이 처음부터 의도한 건지, 우연히 효과를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몇 바퀴 집안을 돌다 보면, 랄라는 자연스럽게 유모차에 눕게 되었고 결국 다시 잠이 들었다. 랄라를 사랑하지만 이런 해프닝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한 번쯤은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작전을 기꺼이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