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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 Mar 04. 2022

인턴 일기 1

이것이 인턴이다!

치대를 졸업하고 필드에 바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대학에서 최대한 걸칠 것을 걸치고 나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전문의를 따는 일까지 라면 기꺼이 그러려고 했다.

전문의를 따려면 인턴 1년 + 레지던트 3년의 수련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인턴은 1년, 12개월 동안 치과 병원 내의 모든 과들을 돌게 되는데 치과 병원에는 9개의 과가 있으므로 특정과는 두 번씩 가도록 스케줄이 짜였다. 따라서 스케줄이 인턴마다 달랐기에 어떤 인턴이 어떤 스케줄을 돌지는 제비뽑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운이 정말 좋아서 그나마 쉬운 스케줄을 고를 수 있었고 그렇게 나의 첫 과는 보철과가 되었다. 보철과는 구강악안면외과 다음으로 힘든 과였다. 퇴근은 할 수 있었지만 퇴근 시간이 너무나 늦은 과.(그럼 구강악안면외과는?)


인턴 출근 시간은 아침 7시30분까지였고 퇴근 시간은 밤 10~12시 사이였다. 첫날 그렇게 긴장하며 인턴일을 하다 보니 순식간에 그만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때려치우고 욕먹자.

인턴이든 레지던트든 그 과정에서 누구든 중도 이탈자가 발생하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그의 일까지 대신 맡아해야 하기 때문에 도미노처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따라서 중간에 그만둔다면 욕먹는 것은 필수.

그렇게 하루를 버티고 또 하루를 버티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보철과 인턴의 주된 일은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 치과에 가면 본뜨는 작업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찰흙 같은 것을 입안에 넣고 그것을 굳힌 다음 입안에서 제거하면 그 찰흙에 환자의 치아가 찍혀 나온다. 그러면 거기에 석고를 부어서 굳히면 치아 모양이 재현된다. 그것이 '모델'이다. 

그 모델을 통해 환자의 입안 상태를 360도 볼 수 있기 때문에 검진 때 놓쳤던 부분을 캐치하기도 하고, 환자가 치과를 떠나고 나서도 환자의 입안 상태를 계속해서 볼 수 있으므로 정밀 진단 및 치료계획 수립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현재 치아 상태를 기록하는 역할도 하고 기공소에서 그 치아 모양에 맞게 보철물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토록 모델은 다양한 역할을 하고 보철과에서는 그런 모델들이 특히 많이 쏟아졌다.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본을 떠서 보철과 내부에 있는 기공실로 보내면 인턴들이 석고를 부어서 굳혔다. 그리고 석고로부터 찰흙을 때어냈다. 방금 찰흙에서 때낸 석고는 가장자리가 지저분하기 때문에 트리머로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자리에 '보더'라는 모델의 가장자리를 새로 형성해주는 작업도 필요했다. 그리고 모델이 완성되면 각자의 레지던트 선생님들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이때 어떤 모델이 어떤 환자의 것인지 섞이면 안되기 때문에 환자분 이름이 적힌 태그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가장자리를 가다듬는 과정에서 분실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운팅'이라고 상악(위턱) 하악(아래턱)의 모델들을 교합기라는 것에 각각 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 교합기 관절이 환자의 턱관절처럼 위아래로 움직여서 마운팅이 완성된 모델은 마치 환자가 입을 여닫는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모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분실되거나 모델이 손상되면(특히 치아가 깨지면) 엄청 혼이 났다. 한 명의 인턴이 잘못해도 그 달의 인턴이 모두 같이 혼이 났다. 그것이 인턴이었다.

그 와중에 응급실 당직을 섰고(인턴 근무하다가 응급실 가서 밤새고 다음날 평소처럼 근무)

그 와중에 가끔 일요일에 근무를 했다.

대부분 서서 일했기 때문에 가운 바지 속에 압박 스타킹을 신었고

점심시간이 어떨 때는 15분이어서 밥을 입 안을 쓸어 넣었다.(식당까지 가는 시간 5분, 먹는 시간 5분, 오는 시간 5분).

그것이 인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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