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선생님: 공문잔혹사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by 베로니카


방과후 업무를 인수인계받았다. 교무행정사님, 방과후 코디님이 지원되지 않을 때라 모든 것을 내가 해야했다. 작년 공문을 보면서 비스무리하게 올해의 방과후 학교 신청 안내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교감선생님께 보여드렸다.


"그려, 올려."


교무업무시스템에 올리기 위해서는 꼭 구두결재가 필요하다. 아무튼 나는 구두결재를 받았고, 당연히 결재해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신속하게 결재를 올렸다. 올리자마자 전화가 왔다.


"어, 난디, 그거 다시 해야겠어. 표 모양이 이상해."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전화는 계속 걸려왔다.(교무실과 우리 교실 30미터도 안됨). 그리고 나는 초과근무를 신청했다.


"어, 남샘, 맨 앞에 학부모님한테 드리는 글을 조금 고쳐야 될 거 같어."

"나여. 표 위치를 위로 다시 해봐."

"문맥이 안맞는 글이 있으니께 수정하라고."

"글씨체를 다른걸로 바꾸면 워뗘?"


그리고 나는 수정된 여섯장의 안내장을 갖고갔다. 이게 그거 같고 그게 이거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수정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교감선생님은 "어, 왔어?" 했다. 여섯장의 종이를 살펴보았다. 미간에 힘을 잔뜩 주시고. 그리고 한마디를 하셨다.


"맨 처음에 그걸로 혀."


나는 결재를 올리고 마티즈를 포르쉐처럼 몰며 화가 난 채로 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되나. 내가 이것밖에 못하나. 안내장 하나 만드는데 네시간이 걸릴 일이냐고. 심각하게 다른 직업을 알아보다 일주일만에 포기했다고 한다. 10학급짜리 작은학교였고, 나는 큰 학교에서 전보를 온 첫해였다. 왜 그러셨던걸까? 구두결재를 그때그때 안받아서 결재를 안해주신건지, 그냥 혼자 야근하기 싫으셨던건지, 젊은 애 똥개 훈련시키고 싶었던건지, 그 사유는 지금도 알수 없다.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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