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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나무 Oct 11. 2023

전화 부탁드립니다, 라는 문자

그정도 참을성 없이 문자보낼거면 애는 집에서 키우세요.

  

전화부탁드립니다.     


이 글자를 문자로 받는 교사는, 하루종일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 특히 폭언과 욕설과 고소 고발의 단어를 전화를 통해 마구 들어본 교사라면 더더욱 손이 떨리는 문자가 아닐수 없다.     


기관파견 약 1.8년째, 몇 달 뒷면 초등학교로 돌아가야하는 나로서는 한동안 저런 문자로 데미지를 입을 일이 없어서 고된 노동에도 버틸 수 있었다. 아이들과 엮인 어떠한 모임에서 한낱 학부모일뿐인 나는, 숨죽여 지내는 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러던, 그런데, 갑자기, 아무튼 어느날.      


급하게 누군가를 찾는 내용이 단체톡에 떴다. 조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내가 그 다급한 현장을 못본척 하지 않았다는게 실수라면 실수였겠다. 무슨일이시냐 물으니 대표조장 연락처를 알려달란다.      


연락처, 다급,      


문득, 옛날 일이 생각난다.


-선생님, 수업 끝나고 전화좀 주세요.

-선생님, 급한 일입니다. 전화부탁드려요.

-전화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상담드릴게 있으니 전화 부탁드립니다.     


나는 모두가 보는 단체톡이니 예의를 갖춰 말했다. 연락처를 모르니 조금 기다려달라고, 용건을 말씀해주시면 전달드릴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연락처를 달란다. 이미 참을성이라는 것이 없는 상태로 보였다. 나는 개인톡으로 다 일하시는 시간이실 수 있으니 단체톡에 그분이 있는 걸 확인했으니 그분에게 용건을 주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보이스톡이 울리는게 아닌가.

와. 개인톡 가자마자 보이스톡

보이스톡!!!

업무중인데!!!

일하는 중인데!!!!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마지막 남은 인류애를 짜내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바쁘세요?”

“네.. 일하는 중입니다.”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아 죄송합니다. 문자로 용건 드릴게요. 라고 할 줄 알았다. 지나친 기대였다.


“아, 우리 애가요 이런저런 것 때문에 참여해도 되는지 궁금해서 블라블라”

“작년 기준으로는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한번 직접 나오셔서 담당자와 말씀 나눠보세요.”

“아 문제가 없다는거죠?”

“작년에는 상황정리를 잘 해주셨었다고요.”

“그래서 한번 나오라고요?”

“행사일 전에 한번 나오셔서 말씀 나누시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아 나오면 되는거구나. 알겠습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불쾌했다. 내 바쁜시간 쪼개 급히 전화를 받았더니 내용은 '우리 애가 기분이 상할것에 대해 걱정하는 전화'였다. 내가 담당자도 아니고, 담당자였어도 사실 크게 해줄게 없는 전화였다. 호의를 베풀려고 했던 내가 싫어지기까지 했다.

바빠죽겠는데! 정중하게, 문자로 말하라고 다섯 번이나 더 말했는데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전화를 거는 이 여자는, 호구같던 내 학교생활을 기억에서 끄집어내버렸다.


<전화부탁드립니다>


라는 성의없는 문자를 보면, 또 당할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여 잠시 고민했던 내가 생각났다. 십년이 넘도록 저 문자를 보고 전화를 걸었을 때에는 이상한 소리의 대향연을 감상할 확률이 몹시 높다. 하지만 만에 하나,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교사로서의 셀프 가스라이팅을 시작한다. 그리고 가슴을 두어번 쓸어내린 뒤 전화를 하면      


-우리 애가 이것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고 하네요.

-애가 학원에서 쟤하고 약간의 문제가 있었고요

-애가 선생님이 좋다고는 하는데 공부가 잘 안되나봐요

-우리애가 시금치를 안먹는데 선생님이 먹으라고 해주세요

-우리 애 아빠가 애한테 엄하니까 선생님은 친절하게 해주세요

(너무 생생해서 쓰는동안 손이 떨리네)     


쓸 수 있는 문자가 ‘전화좀 주세요’라는 말밖에 없는 자들에게 말한다. 지금 그 전화를 받으며 공황증과 피로에 시달리는 분들이 당신들의 자녀와 하루 여섯시간 보내고 점심밥을 먹이며, 당신의 자녀를 평가하는 선생님이다. 고스톱쳐서 아무나 뽑는 선생님 아니고 당신 자녀 민주시민으로 육성하도록 성장을 돕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사.


일반적으로는 대화가 시작되면 대부분 용건을 먼저 간단히 이야기 한다. 가까운 관계여도 링크나 사진만 카톡으로 전송하거나 전화달라고 하지 않는다. 다짜고짜 <전화좀 주세요> 하는 문자는 정말 무례하다. 일반적이지도 않다. 나도 지금은 친절한 교사는 아니다. 모종의 일로 흑화하였다. 그렇게 된 이후에는 학기초에 꼭 말했다. 일과시간중에만 문자주시고 문자로 용건을 확인한 뒤에 전화드리겠다고. 하지만 교사의 핸드폰 번호가 공개된 이상 밤 9시, 새벽 1시에 갑자기 전화해서 우리애 기분이 상한 이유를 그 이후로도 해대는 사람이 있었다. 내년에는 공직자메일만 오픈할 예정이다. 나는 이제 행복해지고 싶다. 수업중에 전화부탁드린다는 문자땜에 스트레스받고싶지 않고 문제아 때문에 선량한 학생의 배움을 망치고 싶지 않다.  받지말라고? 안받아보시면 다음날 학교가자마자 교장실 불려가는 경험을 하게된다는걸 알수 있다.


문제가 많다. 수업을 좋게해도 안좋게 해도 우리 애 기분과 보호자의 불안이 결합되면 어딘가에 풀어야만 하는, 스마트폰을 열어 톡이나 문자를 날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참을성 없음이 큰 문제다. 제깍제깍 대답해주며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했던 교사도 큰 문제다. 사실은 애당초 무례함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회사>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전 알았다는것도 문제이며, 기분상해죄에 대한 법개정만 유독 진척되지 않는것도 문제이자 슬픔이다.     


자, 그렇다면 법개정을 요구하는 동시에 우리는 연습해야 한다.

첫째, 서로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않을 것(과잉서비스도 그만).

둘째, 무례함에 대해 당신은 무례하다고 말할 것.


파견을 나와 지원업무를 하는 내가 오랜만에 학부모가 아닌사람에게 이딴 전화를 받아도 하루가 망가지는데, 학교는 어떠하랴. 부디, 학교현장에 계신 분들이여. <전화부탁드립니다>에는 <용건을 문자로 주시면 확인 후 답변드리겠습니다>로 응수하시길 바란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일이 사실은 걱정이기도 하다. 학교를 나와보니, 학교만큼 사람잡는 곳도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이러한 슬픈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십오년 정도 버텨왔는데, 이 무례함으로부터, 나는 무사할 수 있을까. 무례함을 참지 못하는 자가 자녀를 낳았다면, 홈스쿨링 하게 하는 법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사립학교에 돈내고 보내거나.


202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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