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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노래하는 고유진씨께 2

feat. ㄱㄸㄹㅁ

by 봄비

당신이 나를 콘서트에 초대해 주시다니요.


그것도 매년 가을,

가을의 매일마다.

카운터테너*의 발성을 자랑하는

당신의 애잔한 음색을

내 발걸음 닿는 곳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다니

저의 무심한 발걸음에도

숨결을 담아주셔서 황홀합니다.


아직 인간 고유진*씨의 콘서트에도 못 가본

알뜰한 제가 당신의 무료 콘서트를 즐기다니요.


사랑은 사고처럼 우연히 오나 봅니다.

가을이 스며드는 어느 아침의 숲 속 산책길.

처음 들어보는 당신의 목소리!

다른 이는 쉴 새 없는데,

당신은 질리지 않는 여백이 있더라구요.

다른 이들보다 한 톤 높은 키로

애잔한 비브라토*를 구사하는,

유난히도 청량한 목소리를 가진 당신.


이름을 알면 사랑은 급진전되는 법.

당신의 이름을 알아내기로 한 저녁.

귀뚜라미 여치 베짱이 방울벌레 하다 하다 곱등이까지.

저녁 식탁은 온통 풀벌레 천지가 되었어요.


당신의 정체를 아직 몰라요.

그러나 괜찮아요.

개망초든 기차길꽃*이든,

하늘하늘 계란후라이 꽃만 피워내면 되잖아요.

귀뚜라미든 방울벌레든 바퀴벌레든

제가 당신을 찾아냈으니 된 거겠지요.

그래도 아쉬워

저는 당신을 풀벌레계의 고유진이라

이름했어요.


이렇게, 내 숲 속에는 고유진씨가 살게 됩니다.

그런 당신은 나를 콘서트에 초대하지요.

고맙진 않아요.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던 그 아침,

길거리 캐스팅을 하듯

제가 당신을 발굴했으니까요.

기획사 사장 정도면

초대받아 마땅한 일이겠지요.

아름다운 지구생명체, 당신을 알게 된 이 가을,

발걸음 닿는 곳곳이 콘서트장이랍니다.

설레는 마음 한가득이에요.



*카운터테너: 변성기를 거친 후에도 훈련된 가성으로 여성의 높은 음역을 노래하는 남성 성악가.

*고유진: 밴드 플라워의 보컬. 성악전공자로서 카운터테너 음역을 소화할 수 있음.

*비브라토: 노래를 할 때 음높이에 규칙적인 진동을 주어 음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음악 기법.

*기차길꽃: 개망초가 기차길을 따라 우후죽순 피어났다고 하여 불리는 이름, 철도풀을 말함.







이 풀벌레씨를 만난 그 아침이 나에게 유별났을까요. 아님 내 감성 세포가 다시 살아난 걸까요.

놓치고 사는 많은 것들. 천천히, 자세히, 오래 다시 들여다볼 일입니다.


며칠을 풀벌레 울음소리를 검색한 결과, 풀벌레계의 고유진씨는 아마도 귀뚜라미 사촌, 방울벌레인 듯 해요.




# '고유진' 관련 글을 소개합니다.

https://brunch.co.kr/@rainyspring/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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