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ㄱㄸㄹㅁ
당신이 나를 콘서트에 초대해 주시다니요.
그것도 매년 가을,
가을의 매일마다.
카운터테너*의 발성을 자랑하는
당신의 애잔한 음색을
내 발걸음 닿는 곳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다니
저의 무심한 발걸음에도
숨결을 담아주셔서 황홀합니다.
아직 인간 고유진*씨의 콘서트에도 못 가본
알뜰한 제가 당신의 무료 콘서트를 즐기다니요.
사랑은 사고처럼 우연히 오나 봅니다.
가을이 스며드는 어느 아침의 숲 속 산책길.
처음 들어보는 당신의 목소리!
다른 이는 쉴 새 없는데,
당신은 질리지 않는 여백이 있더라구요.
다른 이들보다 한 톤 높은 키로
애잔한 비브라토*를 구사하는,
유난히도 청량한 목소리를 가진 당신.
이름을 알면 사랑은 급진전되는 법.
당신의 이름을 알아내기로 한 저녁.
귀뚜라미 여치 베짱이 방울벌레 하다 하다 곱등이까지.
저녁 식탁은 온통 풀벌레 천지가 되었어요.
당신의 정체를 아직 몰라요.
그러나 괜찮아요.
개망초든 기차길꽃*이든,
하늘하늘 계란후라이 꽃만 피워내면 되잖아요.
귀뚜라미든 방울벌레든 바퀴벌레든
제가 당신을 찾아냈으니 된 거겠지요.
그래도 아쉬워
저는 당신을 풀벌레계의 고유진이라
이름했어요.
이렇게, 내 숲 속에는 고유진씨가 살게 됩니다.
그런 당신은 나를 콘서트에 초대하지요.
고맙진 않아요.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던 그 아침,
길거리 캐스팅을 하듯
제가 당신을 발굴했으니까요.
기획사 사장 정도면
초대받아 마땅한 일이겠지요.
아름다운 지구생명체, 당신을 알게 된 이 가을,
발걸음 닿는 곳곳이 콘서트장이랍니다.
설레는 마음 한가득이에요.
*카운터테너: 변성기를 거친 후에도 훈련된 가성으로 여성의 높은 음역을 노래하는 남성 성악가.
*고유진: 밴드 플라워의 보컬. 성악전공자로서 카운터테너 음역을 소화할 수 있음.
*비브라토: 노래를 할 때 음높이에 규칙적인 진동을 주어 음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음악 기법.
*기차길꽃: 개망초가 기차길을 따라 우후죽순 피어났다고 하여 불리는 이름, 철도풀을 말함.
이 풀벌레씨를 만난 그 아침이 나에게 유별났을까요. 아님 내 감성 세포가 다시 살아난 걸까요.
놓치고 사는 많은 것들. 천천히, 자세히, 오래 다시 들여다볼 일입니다.
며칠을 풀벌레 울음소리를 검색한 결과, 풀벌레계의 고유진씨는 아마도 귀뚜라미 사촌, 방울벌레인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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