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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덟 살 아이의 가을

여름의 끝자락에 살짝 묻어난 가을 이야기

by 봄비

오늘부터 가을!

계절은 이렇게 오지 않는다.

사랑처럼,

슬그머니 궁둥이를 들이밀고 본다.

사랑이 어느 날 시작되었는지 모르듯,

가을이 슬며시 스며들어

지루했던 세상이 다시 새롭게 보이던 날.

날은 찬란한데 내 필력은 찬란하지 못하여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던 즈음.

니가 무슨 시를 쓴다고...

자조(自嘲)하던 즈음이다.


여덟이라는 글자도 겨우 쓰는 여덟살 아이가

쉽게도 시를 쓴다.

뭔가 똑같은데

뭔가 달라졌어요!

나무도 하늘도 그대론데

그래도 뭔가 달라졌어요!


그래, 나도 그 말이 하고 싶었다!

똑같은 풍경인데 뭔가 다르다고.


그 눈을 보아야 했는데.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진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흥분된 목소리는 어떻고!

마디마디 힘주어 말하는 그 목소리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여덟 번 가을을 만난 아이도

반백 번 가을을 만난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계절을 맞이하는 동무였다.

반백살 어설프고 구차하여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나보다

일필휘지,

여덟 살 니가 낫다.





지금은 이미 가을이 왔음을 모두가 느낄 수 있는 날들인데, 아이가 말한 시점은 '여름의 끝자락에 살짝 묻어난 가을'무렵입니다. 하루하루 가을이 더 스며들어 아이의 표현이 묻혀버릴까봐 마음이 급해져서 연재일도 아닌데 글을 올립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만난 우리 반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8월 말 쯤일까요. 하여튼 그 무시무시했던 폭염이 아주 조금 사그라들기 시작한 어느 아침입니다. 아직 여름이라고 느낄 무렵이지요. 아침 등교길에 책가방을 휙 던지며 아이가 하던 말이 너무 제 생각과 똑같았어요. 그 무렵 저도 뭔가 달라진 계절을 글로 옮기고 싶었는데 아이의 이 한 마디를 듣고 그냥 포기했지요. 아이보다 더 잘 표현할 자신이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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