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선 상주의 인연 따라 다양한 이들을 만나게 된다. 오늘은 부안 사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최근 농촌의 이슈였던 조합장 선거 이야기가 나왔는데, 부안만은 조용했단다. 아직도 주민이 갈라서 싸웠던 기억 때문에 좀처럼 입장을 나누어 이야기를 나누질 않는단다. 방폐장 건설 논의가 촉발된 것이 2003년, 20년이 지났건만.
부안에서 촉발된 갈등 탓에 한국 민주주의는 상당한 실험과 진전을 경험했다. 이른바 공론화라고 하는 숙의민주주의도 이 경험에서 배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방사성폐기물도 사용후 핵연료와 중저준위 폐기물을 구분하여 추진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전체에 그런 선물을 안긴 부안은 지금도 입을 다문 채 쥐 죽은 듯 어둠을 살고 있다. 그때 누가 찬성했었고, 누가 반대했었는지, 다 알고, 다 기억하고 있단다. 그래서 말이 없단다. 죽은 이 하나 없었던 그저 사회갈등일 뿐이었지만.
갑상선암, 유방암, 간암, 폐암, 담도암, 췌장암. 어느 암이 더 착하니, 나쁘니 경쟁하는 이야기에 질려버려 입을 닫곤 했는데, 비슷한 느낌이었다. 4.3을 3.1절이나 광복절과 비교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랫집 윗집 사이에 몇 년 동안 총칼을 주고받고 50여 년을 입 다문 채 어둠, 아니 지옥을 살았을 이들에게, 그럼에도 끝끝내 살아남아 삶을 이어 후손들에게 건네준 이들에게. 그냥 감사면 족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놓지 않아주셔서 고맙다고.
안개처럼 자욱하게 감싸고 있었을 그 침묵의 장막이 어떤 것이었을지, 오늘 어느 장례식장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그 기억에 대해 평을 하고, 말을 보태는 것이 덧없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