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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Nov 16. 2019

지옥의 국경 넘기

1년 간의 세계여행 기록 ⎪몽상가도 때로는 지구 나들이를 합니다.

  여행 11일 차, 2017년 4월 28일

  베트남에서 11일을 보낸 후 대망의 슬리핑 버스를 타고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넘어가는 날이다. 예전에 유럽에서 슬리핑 기차를 타본 적은 있지만 구비구비 산을 넘는 슬리핑 버스는 처음이었기에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오후 5시, 나와 건형이는 초코파이, 물 등의 일용할 양식을 구매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당분간 제대로 씻지 못할 것이기에, 세면과 양치를 꼼꼼히 했다. 그간 안면이 익은 숙소 직원과 미소로 인사를 나누고 버스를 타러 나섰다. 거의 꼬박 하루가 걸릴지도 모른다는 슬리핑 버스를 타고 과연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을까. 멀미를 조금 하는 나로서는 꽤나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행 출발 전 효과가 좋은 멀미약을 준비해놨기에 별일 없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렇게 우리는 픽업 장소로 나갔고 그곳에는 우리 말고도 여러 나라에서 온 다른 여행자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독일에서 온 젊은 여성 여행자였고, 한 명은 맥주에 취해 이미 얼굴이 붉을 대로 붉어진 폴란드 아저씨였다. 독일 여행자는 동남아만 4개월 정도 여행하러 왔다고 했고, 이미 슬리핑 버스의 경험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오늘 버스를 타고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넘어간 후 바로 다시 방비엥으로 간다고 했다. 슬리핑 버스도 모자라 한 번 더 버스를 탄다니 난 절대 못, 아니 안 할 거라는 마음속 다짐을 했다. 그때 붉은 얼굴의 폴란드 아저씨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독일 여성 여행자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독일 친구도 처음에는 그의 말에 대꾸하다가 금방 질려버린 눈치였다. 그도 그것을 느꼈는지 갑자기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니 그는 “North the mother fxxker! crazy guy!”하며 열변을 토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흥분에 우리는 그저 허허하고 웃을 뿐이었다. 지금 이 여행이 게임이라면 그는 분명 기다림의 지루함을 없애주러 온 괴팍한 NPC가 분명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 마침 우리의 기다림을 종결시킬 버스, 아니 벤이 도착했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한 차 안을 보고 당황했지만, 터미널로 가기 위해서는 몸을 최대한 구겨서라도 이 벤을 타야만 했다. 정말 좁고 멀미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버스 안 나만의 안락한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30여분을 달려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날은 베트남 국경일 주말로 많은 현지인들 또한 버스를 이용하는 피크 시즌이었다. 조금은 당황하였지만 침착하게 버스를 타러 이동하였다. 안내자로부터 우리가 구매한 500000동짜리 (한화 약 25000원) 티켓을 받고 수많은 버스들이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안내자가 한 버스 앞에 잠시 멈추었다. 우리는 꽤나 번지르르한 버스를 보며, 이동이 생각보다 더 괜찮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 버스는 이미 현지인들의 차지로 2석 빼고는 만석이었다. 다른 외국 여행자 2명만이 그 버스에 올랐고, 우리는 다시 다른 버스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문득, 내가 아는 버스 예매 시스템과는 개념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마치 복불복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구매한 좌석을 안정감 있게 누린다기보다는, 그저 한 명, 한 명 어디론가 팔려나가듯 자리를 얻는 식이었다.


  다행히 두 번째 버스에는 자리가 있었다. 나와 건형이, 함께 벤을 기다렸던 독일 친구, 그리고 국적은 유럽계 소녀 여행자 두 명이 맨 뒤 다섯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베트남 현지 사람들로 보였다. 버스에 오르기 전 미리 준 비닐봉지에 신발을 담아야 했다. 좌석은 이미 평평하게 눕혀 있었고, 나는 안정감이 드는 창가 자리를 선택했다. 바깥을 잠깐 보고 싶어 커튼을 쳤는데, 창문에는 돌인지 총알인지에 맞아 깨진 자국이 있었다. 커튼을 바로 닫았다. ‘설마 총알은 아니겠지?’라는 의심이 스쳤지만 금세 ‘워이!’하고 내쫓았다. 생각을 돌려보려는 셈으로 각자의 자리에 누워있는 건형이와 외국 친구들을 보았다. 처음 보는 이국의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같은 목적지를 그리며, 오순도순 담요를 덮고 있는 모습이 답답해 보이면서도 나름 아늑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그래, 이 아늑함에 기대 잠을 자고 일어나면 라오스 국경에 다 다라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잠을 청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나의 감상이 참으로 낭만적인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버스는 1시간도 채 가지 않아 멈추었다. 또 누가 타는 건가 했지만 사람은 더 이상 타지 않았다. 대신 통로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일꾼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천떼기를 싣기 시작했다. 바깥은 깜깜해서 보이지 않았고, 그저 그 짐들만 우리의 앞에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정도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그 짐들은 멈추지 않고 우리 눈앞에서 더욱 높이 쌓여갔다. 급기야 일꾼은 소녀 여행자 두 명의 좌석을 조금 접어 그 뒤에도 그것들을 놓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It’s not flat!”하며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일꾼들은 베트남어로 그저 중얼대며 그들의 일을 성실하게 할 뿐이었다. 이런 일 밖에 모르는 바보들!


  결국 그들은 정체모를 짐들을 뒤에다 싣기 위해 외국 여행자 모두의 좌석을 조금씩 접었다. 앉은 것도 아닌 누운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남은 여정을 진행해야 했다. 아무리 영어로 떠들어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다행히 버스에 영어를 할 줄 아는 베트남 커플이 있어서 물어보니, 조금 이따가 자리가 나면 그때 자리를 바꿔주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티켓을 구매한 것인가! 다시 가서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3시간이 흘렀고 휴게소에 도착했다. 사실 내가 알고 있던 휴게소라고 하기보다는 임시 막사에 더 가까운 곳이었다. 화장실에는 그저 소변을 흘려보낼 하수구 멍과 움푹 파인 긴 홈 만이 있었다. 작은 홀에는 죽지 않을 정도의 간단한 음식 정도를 팔았던 것 같다. 우리는 그곳에서 미리 준비해온 초코파이를 씁쓸하게 씹고 물로 입을 헹궜다. 


  멍한 상태로 허공을 응시하다가 독일 친구를 마주쳤다. 중간에 자리가 나서 먼저 자리를 옮긴 그녀는 우리 자리의 앞쪽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나와 건형이는 자리가 났음에도 알려주지 않은 그 성실한 일꾼들이 괘씸했다. 그래서 당장 버스로 들어가 임의대로 짐들을 빼고 위쪽으로 우리의 자리를 옮겼다. 또, 아까 자리가 평평하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했던 친구들 자리의 짐 또한 다 빼서 평평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우! 속 시원해!’


  이제 드디어 누워서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뭐라고 한다면 나 또한 한국말로 응대하며 자던 잠을 잘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분노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법인지,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금세 잠이 들어 버렸다. 물론 잠을 자는 중간에도 꾸준하게 새로운 짐을 쌓는 일꾼들과 “Oh, fxxking my face!”하며 그들에 대항하는 소녀들의 소리를 종종 들었지만 말이다. 잠에서 깨어나니 버스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전 6시. 여행 12일 차의 아침이 되었다.


  여행 12일 차, 2017년 4월 29일

  차들이 많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국경에 다 다른 것 같았다. 버스가 멈췄고 우리는 몸을 풀 겸 내려 서로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독일 친구는 자리를 옮기고 나서 그래도 비교적 양질의 수면을 누린 것 같았다. 밤새 일꾼들과 대항했던 소녀 친구들의 얼굴은 약간의 잿빛이 돌았다. 그중 친구 한 명은 오늘 생일이라고 했다. 너무 특별한 생일을 맞이하고 있다고 표정 없이 얘기했고, 나는 조용히 “Congratulations…”라고 해주었다.


  오전 7시, 출입국 게이트가 열렸다. 외국인 여행자 그룹은 미리 챙긴 여권을 가지고 함께 심사대로 갔다. 수많은 버스와 차들이 피난이라도 가는 것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차들을 따라 심사대로 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창구 근처에 몰려 있었다. 재빨리 그곳으로 가 줄을 섰다. 사실 줄이 어디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권을 한 뭉치로 들고 그 사이에 돈을 끼워 넣은 채 새치기를 해댔다. 알고 보니 현지인들 여권은 미리 걷어 돈을 주고 일괄 검사를 맡는 것이었다. 현지인 전부가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본 경우에는 그랬다. 면대 면으로 하지 않는 출국 심사라니 놀라웠다. 


  줄보다는 반 원에 가깝게 모여 있는 인파 속에서, 외국인들만 정직하게 줄을 서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상태면 저녁이 되어도 출국 심사를 못 받을 것이 확실했다. 독일 친구 또한 그것을 느꼈는지 새치기를 하려는 사람에게 소리를 치며 단호하게 줄을 서라고 했다. 나 또한 새치기를 하려는 사람들을 육탄 방어하며 우리의 순서를 겨우 지켜 내었다. 외국인이라는 게 참 서러운 순간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인터넷에서 미리 본 블로그 팁에 따라 20000동(한화 약 1000원)을 넣은 여권을 창구로 전달했다. 역시 미리 준비해놓은 덕인지 무사히 출국 도장을 받았다. 긴장이 살짝 풀렸는지 소변이 마려워 베트남에서 마지막 소변을 보고, 바로 국경을 넘으러 갔다. 어느덧 충분히 달궈진 마른 흙 길을 두 발로 걸어 라오스 땅에 입성했다. 


  두 발로 처음 넘어본 국경, 왠지 모르게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의 터프한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싶었다. 물론 현실은 얼굴과 머리에 기름기가 가득하고, 양치를 하지 못해 입 속은 텁텁해 말 조차 쉽게 꺼내지 못하는 누추한 여행객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걷다 보니 라오스 국기와 함께 심사대가 보였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줄 구분 없이 창구 앞에 몰려 있었다. 우선은 차분하게 입국 문서를 작성하고, 마치 수영을 하듯 밀쳐대는 현지인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배려 없이 밀어대는 사람들에 다시금 예민해졌지만, 나름 이미 경험을 했기에 비슷한 강도의 방어로 내 순서를 지켰다. 내 차례가 되었고 베트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1달러를 여권에 넣어 창구로 전달했다. 그런데, 창구 직원이 1달러를 돌려주었다. 괜한 감동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권을 돌려받는 옆 창구에서 무려 5달러를 요구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5달러는 너무했다. 인터넷에서도 보지 못한 정보라, 왜 5달러를 내야 하냐고 계속 물어보니 무책임하게 창구 옆 표를 가리킨다. 하지만, 표에도 5달러에 상응하는 숫자는 전혀 적혀있지 않았다. 결국 있는 잔 돈을 털어 4달러를 그냥 밀어 넣고 겨우 여권을 받았다. 아직 법보다는 현실적 규칙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국경에서의 전투는 이렇게 끝이 났다. 물론 줄 서는 동안 썩 유쾌하지 않은 육탄 스킨십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현지인들의 치열한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곳을 탐험할 수 있는 인증 마크를 받아낸 것이다! 후후.


  이제는 버스에 편히 누워 가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비엔티안까지는 온 만큼 더 가야 하지만, 버스 안에는 나를 밀치는 사람도 돈을 요구하는 사람도, 이상한 짐을 싣는 사람도 없었다. 버스를 타기 전 멀미가 가장 큰 위기일 것으로 생각한 스스로가 조금 우스웠다. 치열한 몸싸움과 머리싸움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육신은 멀미를 품을 여유가 없었다. 문득, 걱정이라는 것도 하나의 계획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계획은 그것이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때로는 내가 알지 못했던 무언가 앞에서 무력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걱정 또한 실제로 접하는 상황에 따라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물론 걱정과 계산은 피하려는 것과 이루려는 것에서 그 목적이 다르지만, 피하려다 오히려 이룰 수도 혹은 이루려다 오히려 피하기도 한다는 점에서는 또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자리에 몸을 뉘었다. 몇 시간을 멈추었던 버스는 이제 새로운 도시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봤다. 라오스 같은 배경이 펼쳐졌다. 라오스 같은 배경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도장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라오스는 라오스처럼 보였다. 이곳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상상은 할지라도 구체적인 계획은 하지 말아야겠다. 계획을 해봤자 어차피 한, 두 대 얻어맞을 것이 뻔할 테니까 말이다. 바다 물결 위에 그저 몸을 맡기는 게 최선이다. 계획을 하지 않으면 맞을 걱정 또한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하. 어찌 되었건 몸 건강히, 두 번째 나라 라오스에 입성했다!






p.s ‘누구나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라는 타이슨의 명언은 명언을 넘어 철학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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