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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JI Aug 05. 2024

샤모니 몽블랑

첫만남

늦잠 자고 일어나니 오늘의 일정이 결정되어 있었다. 몽블랑을 보러 간다고 한다. 샤모니(Chamonix)로 가는 차에서 선배는 몽블랑을 관광하는 세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자유이용권 사서 이곳저곳 다 가보기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 가기

프레제레(Flégère) 가기

2번이 귀에 익었다. 어느 블로거가 아이와 여길 올랐는데 아이에게 고산병이 와서 바로 내려왔다고 했다. 우리는 3번을 골랐다(고도 1,877 미터). 가격도 가장 저렴했다(성인 왕복 23유로).


가는 길에서부터 마음이 들떴다. 들판 사이로 키 크고 늘씬한 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었다. 가까운 산은 쨍하니 푸르렀고 멀리 있는 산은 눈에 덮여 뿌옇게 보였다. 설산은 삶의 터전과 가까운 푸른 산과는 달라 보였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에게는 퍽 무서웠겠다, 그래서 신성시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모니에 가까워질수록 설산은 크고 또렷해졌다. 햇빛에 반사되어 파란색 빙하가 반짝였다. 군데군데 뒤덮인 눈에는 얼룩덜룩 때가 타 있었다.


주차 후 케이블카로 프레제레에 올랐다. 제일 높은 봉우리가 몽블랑일 테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몽블랑의 생김새는 사실 특별한 데가 없었고, 여러 봉우리가 함께 모여있는 전체 그림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눈앞의 광경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또 보면서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많은 사람들이 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몇 시간만 걸으면 ‘라끄 블랑’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호수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도 팔다리를 쭉 펴고 거침없이 걷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하지만 무리라는 걸 알았다. 아쉬운 대로 지척에 있는 작은 인공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남편이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왔는데 심심해 1호가 관심을 보이더니 카메라는 곧 그의 차지가 되었다. 진지한 얼굴을 하고 꽤나 안정적인 자세로 사진을 찍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는 접사를 좋아했다. 꽃에 시선을 줄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보이는 들꽃마다 렌즈를 들이댔다.


케이블카 아래 좁은 계곡에는 샤모니 골프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골프를 치면 경치에 정신이 팔려 공이 도통 맞을 것 같지 않았다. 골프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늘의 요리는 렌틸과 머스터드소스가 들어간 돼지고기(pork cheek)였다. 평소 내가 만들어주는 수육을 잘 먹지 않는 심심해 1호가 이 요리를 맛있게 먹어 당황스러웠다. 역시 넌 미식가구나. 남편은 이 정도는 흔한 요리라며 집에서 만들어보라고 권했지만 막막해서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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