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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티 Jun 30. 2024

개미 월급으로 베짱이처럼 살기


"나는 부우자아~"

  요즘 입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말이다. 주인의 식탐을 이기지 못해 터질 것 같은 원룸 냉장고를 바라보고 있을 때가 주로 그렇다.

  고등학교 때 나와 비슷한 성적이었는데 교직을 선택하지 않은 친구들에 비해 반토막 난 월급을 받고 있다. 월급이 코딱지만 하다, 눈곱만하다 하며 선생님들끼리 조용히 앓는 소리를 한다. 공무원 연금 좋던 시절도 지난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신규교사 때부터 부동산, 주식 등 재테크 공부를 바로 시작하는 똘똘이 선생님들이 많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잠시 혹하고 부럽지만 나는 어쩐지 소중한 저녁 시간을 좀처럼 재테크에 쓰지 않게 된다.

  퇴근 후의 남아있는 에너지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데만 쓰고 있다. 간단한 요리를 해먹고 치우고 운동 다녀오고 유튜브를 보거나 글을 읽고 쓰다 보면 금세 잘 시간이 되어버린다.

  지금 당장의 내게는 하루를 풍성하게 지내는 게 재테크 공부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핑계다. 공격적인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에겐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는 베짱이 같은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1인 가구의 가장으로서 바라는 부는 이 정도다.

  금요일 밤에 치킨 당길 때 세 번 말고 두 번만 고민하다가 배달시킬 수 있는 정도. 사이드 메뉴로 치즈볼은 당연히 추가할 수 있는 정도.

  부모님 집과 자취방에 각각 러닝화 한 켤레씩 사 놓고 어디에 있던 가벼운 저녁 러닝을 할 수 있는 정도. 운동할 때 쓰는 캡 모자는 색깔 3개는 사놓고 그날 기분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정도. 여름에 친구랑 패들 보드 타러 강원도 당일치기 여행 정도는 쉽게 다녀올 수 있는 정도.

  취업 준비하는 동생이 서류 탈락해서 시무룩할 때 용돈 십만 원 정도는 바로 쏴줄 수 있는 정도. 집에 제철 과일 두 가지는 쟁여두고 골라 먹을 수 있는 정도. 월경 기간에 소고기 먹고 싶으면 만 칠천 원짜리 미국산 냉동 소고기 말고 삼만 원짜리 냉장 한우 한 팩 사서 구워 먹을 수 있는 정도.

  맘에 드는 잠옷을 사 입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는 정도. 아주 가끔 영화관에 가면 오리지널, 캐러멜 두 가지 맛 모두 포기하지 않고 반반 팝콘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정도.

  반면에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내게 크게 필요하지 않은 건 다음과 같다.

- 네일아트(네일 받으려고 앉아있는 과정이나 나중에 제거하는 게 귀찮음)

- 테이크아웃용 아메리카노(커피값은 자릿값이라고 봐서 카누로 충분하다)

- 해외여행(그 돈으로 질 좋은 일상의 행복에 투자하고 싶은 생각)

- 작고 예쁜 가방(텀블러도, 파우치도 안 들어가면 어차피 손이 잘 안 감)

- 술값(술도 잘 못 먹고 비싼 안주는 소화가 안됨)

- 호캉스(호텔 안은 답답함, 수영 못해서 수영장도 오래 못 써먹으니 아까움)

  이런 내게도 공무원이 겸직을 못하는게 아쉬울 때가 있다. 가장 먼저 밤 산책 할 때 도보 배달 아르바이트를 못할 때가 그렇다. 즐겨보는 짠돌이 유튜버가 밤 산책하면서 안 가보던 동네도 구경하고 배달 알바로 용돈도 버는 걸 봤다. 산책 빈도로 보면 나도 피자값 정도는 금방 벌 수 있을 것 같다. 그 돈이면 피자 신메뉴에 손잡이 부분 치즈까지 추가해서 먹을 수 있을 텐데. 쩝.

  또 다른 아쉬운 점은 방학 때 카페 아르바이트를 못한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여러 번 했다. 아침 일찍 커피 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배경 음악을 틀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순간이 더없이 좋았다. 그 시간에 과외를 하면 훨씬 더 짭짤했겠지만 후회는 없다. 방학 때 단기 카페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은데 그림의 떡이다. 쩝.

  구시렁댔지만 결론은 요즘의 나에게 교사 월급이 괜찮게 살아가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그건 내가 경기도 변두리에서 겨우 고시원 크기의 LH 행복주택에 살기 때문이고,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며, 가족 중에 병원비가 크게 들어가는 사람도 없는 감사한 상황과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을 통틀어 내 씀씀이의 황금기 일지도 모르겠다. 오직 나를 위해 돈을 쓰고 모을 수 있는 시기가 얼마나 될까. 훗날 결혼이라도 하면, 아이를 키우면, 가족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교사 월급이 턱없이 부족해질 때가 오겠지 싶다. 그때를 위해 아주 소극적이므로 적금만 꾸준히 하고 있다.

  사주를 본 적이 있는데 나에겐 돈복이 딱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 만큼만 있다고 했다. 대신 인복이 좋아서 부족한 자리를 채워줄 거라고. 근데 돈복보다 인복이 많다는 소리가 나는 마음에 든다. 실제로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 같아 감사하다. 돈복까지 욕심을 내면 놀부처럼 밥주걱으로 턱주가리나 맞지 않을까.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 별일 없이 살고 있다. 개미처럼 번 돈으로도 베짱이처럼 지낼 수 있는 지금을 충분히 만끽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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