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우자아~"
요즘 입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말이다. 주인의 식탐 때문에 터질 것 같은 원룸 냉장고를 볼 때 주로 그렇다.
나와 비슷한 성적이었지만 다른 진로를 선택한 친구들에 비해 반토막인 월급을 받고 있다. 월급이 아주 코딱지만 하다, 눈곱만 하다며 선생님들이 모이면 앓는 소리를 한다. 공무원 연금 좋던 시절은 옛말이라 신규 때부터 재테크 공부를 바로 시작하는 똘똘이 선생님들이 많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잠시 혹하고 부럽지만 그때뿐이다. 고집스럽게 퇴근 후의 남아있는 에너지를 하고 싶은 걸 하는 데만 쓰려한다. 간단한 채소 요리를 해 먹고, 러닝 다녀와서 씻고, 스마트폰 만지작대다 보면 잘 시간이다. 효율적인 성과나 이득은 일절 없는 저녁 루틴이다. 내게는 하루를 풍성하게 지내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댄다. 재테크 똑똑이들에겐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는 베짱이 같은 삶일 것 같다.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1인 가구의 가장으로서 바라는 부는 이 정도다.
금요일 밤 치킨 당길 때 세 번 말고 두 번만 고민하다가 배달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그때 사이드 메뉴로 치즈볼은 당연히 추가해야겠고. 부모님 집과 자취방에 러닝화 한 켤레씩 사놓고 어디에 있던 가볍게 뛸 수 있으면 좋겠다. 운동할 때 쓰는 캡 모자는 깔별로 세 개는 사놓고 기분에 따라 고르고 싶다. 여름엔 패들 보드 타러 친구랑 당일치기 여행 정도는 쉽게 다녀오는 삶이길. 그리고 취업 준비하는 동생이 쭈구리모드 일 때 용돈 몇 푼은 바로 쏴줄 수 있는 멋짐은 지키련다.
또, 냉장고에 제철 과일 두 가지는 쟁여두고 골라 먹을 테다. 월경 기간에는 한 팩에 만 칠천 원짜리 미국산 냉동 소고기 대신 삼만 원짜리 한우 한 팩 호쾌하게 집어 들어야겠다. 목 늘어난 헌 옷 대신 레이스 달린 꽃무늬 잠옷을 굳이 사 입으련다. 영화관 가서 오리지널, 캐러멜 중에 어떤 맛을 먹을까 고민하느라 심각해지고 싶지 않다. 반반 팝콘으로 업그레이드시켜서 다 먹을 거다.
반면에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내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네일아트는 기다리는 과정이나 나중에 제거하는 게 귀찮아서 멀리한다. 커피값은 자릿값인 것 같아서 보통 가루 스틱 커피로 충분하다. 해외여행에도 별 욕심이 없다. 같은 비용이면 국내 여행지를 여러 번 나누어 가는 걸 선호한다. 행복은 자잘하게 나누어 자주 맛보고 싶다.
호텔의 바스락거리는 침구가 탐나면 호캉스 갈 돈 아껴서 질 좋은 이불을 사는 게 낫다는 주의다. 어차피 수영도 못해서 우아한 호텔 수영장 분위기도 부담스럽다. 수영복을 입었으면 도넛 모양 튜브를 끼고 첨벙첨벙 헤엄쳐야 직성이 풀리는데 말이다. 또, 작고 예쁜 가방은 쓸 일이 없다. 파우치, 책, 텀블러도 안 들어가서 손이 안 간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도 공무원이 겸직을 못해서 아쉬울 때가 있다. 도보 배달 아르바이트를 못할 때 그렇다. 즐겨보는 짠돌이 유튜버가 밤 산책하면서 배달 알바로 용돈도 버는 걸 봤다. 산책하는 빈도로 보면 나도 프랜차이즈 치킨값 정도는 일주일 안에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쩝.
구시렁댔지만 결론적으로 요즘의 내 생활이 윤택하게 굴러가는데 교사 월급이 크게 부족하지 않다. 그건 아마도 내가 경기도 변두리에서 고시원 크기의 임대주택에 살고, 당장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도 아닌 감사한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한 몸만 간수하고 살면 되는 팔자 좋은 때다. 인생을 통틀어 내 씀씀이의 황금기 일지도 모르겠다. 오직 나를 위해 돈을 쓰고 모을 수 있는 시기가 얼마나 될까. 훗날 결혼이라도 하면, 아이를 키우면, 가족 중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교사 월급이 부족해질 때가 오겠지 싶다. 그때를 위해 도토리처럼 적금만 꾸준히 쌓아두고 있다.
사주를 본 적이 있는데 돈복이 크게 없어서 개미처럼 일한 만큼만 모인다고 했다. 평생 성실히 일하면서 살아야 한단다. 대신 인복이 좋아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거라고 했다. 인복 좋다는 소리가 맘에 들어서 불만은 없다. 기분 탓인지 실제로도 선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 같아 감사하다. 여기에 돈복까지 욕심 내면 놀부처럼 밥주걱으로 턱주가리나 맞지 않을까.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 별일 없이 살고 있다. 개미처럼 번 돈으로도 베짱이처럼 지낼 수 있는 지금을 속없이 만끽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