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요. 그런데 옆집에 엄빠를 곁들인…"
30살 김모씨는 3년째 9급 공무원 준비 중이다. 대학 졸업 후 경험을 쌓으려 중소기업에 입사했지만 크게 번아웃을 경험하고 부모님 집에 살면서 공부 중이다. 31살 최모씨는 최근 과장으로 승진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다. 회사 근처 원룸에서 투룸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32살 이모씨는 작년에 결혼했고, 첫 아이를 임신했다. 경기도에 마련한 신혼집에서 신혼생활과 태교를 함께 진행하는 중이다. 33살 살 박모씨는 회사를 다니면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 살고 있지만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이토록 다양한 인간상을 가진 동년배들. 나는 세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는 31살 김란영이다. 에디터, 기자를 거쳐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사무실까지 하루 평균 3시간 안팍을 출퇴근 시간으로 보내는 경기도민이다. 그리고 엄마 옆집에 산다.
누구랑 사세요? 으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청년들이 사회에서 만났을 때 묻는 얘기다. 누구랑 사는가 혹은 어디에서 사는가. 나는 누구랑 사는 걸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을 때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스몰토크 단골 질문이고 대부분 어렵지 않게 대답할 테지만 같이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말만 기억에 남는 거 보면 어지간히 대답하기 곤란했나 보다.
"혼자 살아요. 그런데 옆집에 엄빠를 곁들인…"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기는 힘들다. 왜 엄마 옆집에 사는지 10년간의 역사를 구구절절 설명하기 낯부끄럽다. 더 물어보고 싶지만 초면에 그럴 수 없어 끝내 질문을 삼켜내는 상대방을 견디지 못해 결국에는 모든 걸 말해버리고 후회하는 나를 마주하게 돼서다.
서른 초반. 요즘은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니까, 개인마다 그린 삶의 여정에 따라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갖추는 것까지는 인정. 다만, 사는 동네, 주거 형태, 직장에 따라 숫자로 치환되는 ‘급’을 가늠하는 건 매일 얼굴을 보며 일하는 직장에서나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속에서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주로 부모님이랑 같이 산다고 말하곤 한다. 서울에 있는 회사에 다니면서 혼자 산다고 하면 대게 두 유형으로 나뉘는데, 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비싼 월세를 내고 강남 한복판에 살거나 도심에서는 조금 벗어났지만 출퇴근길이 용이한 서울에 산다. 나는? 경기도에 산다. 아니 회사가 서울인데 왜 지옥철을 타야 하는 경기도에 사는지 항변해야 한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처음 만난 날에는 알리지 못했지만, 엄마 옆집에서 혼자 산다고 말하게 되는 날이 온다. 오래 아는 사이가 되고 조금 더 친해지게 되면 일상에 대해 말을 안 할 수 없고 엄마 아빠와 한집에 사는 일과 옆집에서 혼자 사는 것은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결코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 옆집에 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러워한다. 본가에서 가족들과 북적북적 수선스럽게 살을 맞대고 살면 독립적인 공간에서 가족과 분리되어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호들갑이고, 고향에서 떠나와 혼자 자취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옆집에 엄마가 살고 있어 따뜻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과연 그렇다. 엄마와 아빠가 거주하고 있는 옆집에서 혼자 사는나. 이 듣도 보도 못한 주거 형태는 안정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밥은 모두 옆집에서 먹으며 청소와 빨래도 엄마의 손을 빌려 지금까지 연명하고 있다. 모든 물품은 옆집과 품앗이 개념으로 나눠쓴다. 생활비도 내기는 하지만 티가 안 나는 수준이라 빌붙어 먹고 산다고 표현하기 딱 좋다.
옆집에 얹혀사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어떨 때는 더부살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찍이 결혼해서 집을 떠난 남동생 대신 물리적으로 할 수 있는 자식의 몫은 오롯이 내가 다 하고 있다. 멀리서 사는 아들이 걱정할까 봐 병이 나도 말하지 않고, 집안에서 생기는 슬픈 일도 비밀이다. 그런데 나는 다 알고 있다. 엄마 아는 언니의 조카가 집안일을 분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했다는 것까지 모조리. 생일 케이크를 사 와서 촛불 켜고 노래를 부르는 일도 내 임무고 큰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는 항상 동행하는 것도 나였다.
고단한 일도 있지만 그건 가끔이고 엄마와 아빠의 품에 폭삭 안겨 살 수 있는 건 어쨌거나 행운이다. 집착과 번뇌로 고달픈 시기가 오면 내 공간으로 나 몰라라 도망가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