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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Oct 30. 2022

왜 그렇게 사세요?

엄마 옆집에 사는 이유

나는     빌라 201 살기 시작해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같은 빌라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아홉 살에 엄마 옆집으로 튕겨 나갔다. 아다리가 맞았다. 사촌 언니가 우리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왔고 자취방이 필요했다. 마침 202호가 비었고 엄마와 이모는 매물을 빠르게 낚아채 자신의 딸을 배치했다. 언니와 10년을 같이 살았다. 언니는  집에 살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취업에 성공해 착실하게 직장 생활을 이어가다 결혼과 함께 떠났다.


나는 202호에서 치열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고3 생활을 마무리 지었고, 편도 2시간 걸리는 대학에 진학해 무사히 졸업했다. 뭐해 먹고살지 몇 차례 방황하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커리어 배회를 마칠 수 있었다. 언니가 떠난 엄마 옆집에 홀로 남아 모든 공간을 차지했다.


우리 가족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같은 빌라를 벗어나지 못했을까. 나는 왜 옆집으로 세대를 확장해서 살고 있을까. 이유를 탐구해봤다.


일반적인 얘기들 있잖아.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부모님들의 일반적인 성장 서사. 알지? 여자와 남자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한다. 신혼집은 반지하 단칸방이야.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시작했지만 둘은 아이를 낳고 열심히 일해서 방 두칸 있는 전셋집으로 옮기지. 애들이 크는 만큼 둘의 커리어도 성장하고 연봉도 올라서 신도시 아파트에 입성해. 애들 용돈은 넉넉하게 못 주고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도 대단지 아파트 속 따뜻한 방 하나는 내어줄 수 있게 된 부모들의 성장 서사.


모두가 그런 궤적을 그리며 살아갈 수는 없어. 그냥 제자리에서 머무는 사람도 있는 법이거든. 집은 그대로인데 사람 몸집이랑 나이만 들어가는 거야. 나는 커지지 않는 집에서 바로 그 옆집으로 삐져나왔다. 작은 바지를 입으면 허리춤에 살이 삐져나오는 것처럼.


사실 우리는 집주인 보다 이 빌라에 오래 살았다. 집주인이 좋으면 오히려 안 좋다는 말 들어봤어? 이사 갈 필요성을 못 느껴서 현실에 안주하게 되기 때문이래. 세상에는 참 이상한 집주인이 많다고 들었어. 아주 가까운 사람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줄게. 서울에 있는 투룸 빌라 전세 계약서에는 싱크대를 교체해준다는 조항이 들어갔어. 전에 살던 사람이 10년을 거주하던 곳이라 고칠 데가 많기는 했는데, 바닥은 장판이 아닌 마룻바닥이라 바꾸지 못하고 도배랑 싱크대만 바꿔주기로 했나 봐.


바뀐 싱크대 확인하러 집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어떤 광경을 목격한 줄 아니? 싱크대 하부장만 흰색으로 바뀌어있고, 상부장은 예전 세입자가 쓰던 갈색 그대로였다는 거야. 집주인은 개수대가 있는 곳만 싱크대고 위에는 서랍장 아니냐며 못 바꿔준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어. 새살림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는 짝이 맞지 않는 싱크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집주인 보란 듯이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간다고 돈 열심히 모으더라.


그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좋은 집주인을 만났어. 중간에 한번 집주인이 바뀌었는데, 전세금을 한 번도 올리지 않고 집안의 대소사를 공유해. 남동생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결혼해 아기 아빠가 될 때까지 지켜봤고. 대학생이던 사촌 언니가 결혼하는 것까지 다 봤지. 이 집을 떠나게 되면 내 나이를 듣고 깜짝 놀라는 집주인 아주머니가 그리워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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