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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Jan 23. 2021

엄마 옆집에 삽니다

202호 주민의 일기

장면 하나.


잠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듯 주말이면 오후까지 늘어져 자던 202호 주민이 허리가 아파 더는 못 누워 있겠어서 일어난다. 얼굴에 대충 물만 바르고 현관문을 연다. 코앞에 있는 201호 현관문을 신발장 위에 있는 열쇠로 따고 들어간다.


“어이, 누구 한 명 왔다”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TV를 보던 아빠가 환영 멘트를 날리면, 뒤이어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딸~ 엄마가 정성을 들여서 맛있는 된장찌개 끓여놨어~~ 계란후라이 해줄까?”


 “아우 진짜 맛있다(따봉).”


먹방 유튜버에 빙의해 리액션하던 202호 주민은 식탁에서 밥을 다 먹고 안방으로 가 눕는다.


장면 둘.

우리는 보일러를 뜨끈하게 틀어 놓고 한 이불을 덮고 눕는다. 뉴스를 틀어 놓고 정치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성범죄자를 큰소리로 욕하기도 한다. 엄마가 빼놓지 않고 시청하는 KBS2 주말 드라마를 유치하다고 욕하면서도 아빠와 나는 스토리를 다 꽤고 있다. 어떨 때는 아빠가 가장 몰입해서 아무도 울지 않은 뻔한 상봉 장면에서 질질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들과 놀다 보니 벌써 10시다. 요가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기로 다짐한 202호 주민은 떠날 채비를 한다.


“나 이제 갈게”


“어 그래 빨리 가서 자라”


빨리 보내려는 아빠와 달리, 엄마는 질척거린다.


“아이, 좀 더 놀다가. 5분만. 이리 와봐 5분만 여기서 내 얘기 듣고 가”


결국 오늘도 혼자만의 시간은 물 건너갔다.


202호에 산 지도 10년이 넘었다. 경기도 어느 작은 시에 위치한 역세권에서 조금은 빗겨나 있는 다세대 주택의 2층. 19살 때부터 사촌 언니와 함께 엄마 옆집에서 살았다. 지방에 살던 사촌 언니가 우리 집 근처 대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자취방을 얻어야 했다. 20대 초반 여자가 타지에서 혼자 살기에는 너무 험난한 세상이잖아요? 마침 202호에 살던 가족이 이사를 갔다. 타이밍이 맞았다. 언니는 두 개밖에 없는 방 중 하나를 내게 내줬다.


원래는 201호에 살았었다. 엄마, 아빠, 남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그 집에 살았다. 201호로 이사를 온 건 내가 10살 때다. 그러니까 나는 9년 동안 201호 작은방에서 살고, 한창 예민할 시기인 19살에 202호로 이사를 하게 됐다. 202호 작은방은 너무 작았다. 책상도 작은 걸로 바꿔 크기가 대폭 줄어들었는데도 너무 좁았다. 보통 이불 크기도 너무 커서 맞춤 이불을 맞춰 작은 공간에 욱여넣어야 했다.


온전한 내 공간이 좁다 보니 엄마 공간에 파고들었다. 학교에 다니든 회사에 다니든 201호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었다. 201호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아빠한테 딴지를 걸었다. 다운받아달라는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해주고 9시 뉴스를 보면서 가끔은 아빠랑 싸웠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202호는 항상 어지럽고 복잡했다. 


202호에서는 씻고 잠만 잤다. 공부하거나 글을 쓸 때는 도서관이나 카페에 갔다. 그마저도 귀찮은 날에는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가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내게 주어진 좁은 방이 원망스러우면서도 그 공간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해지는 날이었다. 가방에 들어있던 간식거리로 대충 허기를 채우고 씻지도 않고 잠드는 날도 있었다.


202호 작은방에서 시작한 고3 수험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대학을 졸업해 우여곡절 끝에 작은 잡지사에 입사해 월급을 받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그곳에 머물러있었다. 4대 보험에 가입한 이후부터 좁은 방을 벗어 나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지만 시도는 잠깐에 그쳤을 뿐 나는 계속 그자리었다. 혼자 살 집을 알아보고 대출받아 이사를 하는 과정을 겪어 내는 일이 귀찮고 두려웠다. 사촌 언니는 엄마 옆집에 살고 있는데, 딸인 내가 정작 다른 곳에서 혼자 사는 모양새도 웃기고. 


사촌 언니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202호는 온전한 내차지가 됐다. 엄마 옆집으로 이사를 간지 10년만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201호에 산다. 남동생과 사촌 언니가 결혼을 하고 떠난 이 빌라에서 홀로 202호 주민이 된 나는 오늘도 201호에 가서 밥을 먹고 떠들어 재낀다.


얼마 전 엄마와 아빠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지금 사는 곳보다 서울에서 더 멀어진 경기도에 있는 제법 넓은 아파트다. 2023년 봄에 입주한다. 항상 주머니에 들어가 있지는 않았지만, 주머니에 몸통의 반쯤 걸쳐놓았던 캥거루 새끼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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