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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May 16. 2022

서른 살 부부, 독일로 떠나다

독일을 선택한 이유와 비자 신청


마음이 갉아먹히던 시절, 산과 둘이 오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내 지금의 현실이 괴롭고, 아무래도 이 회사에서 평생 일하진 못할 것 같은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언젠가부터 생각하던 건, 이렇게 계속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다가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르는 젊음을 그저 흘려보내고, 후회하면서 살아갈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이렇게 살다가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전념하느라 어릴 때부터 꿈꾸던 해외 생활도 한번 못 해보고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삶을 살 것 같다는 두려움. 그렇게 되면 내 아이를 원망하고 사랑하지 못할 것 같다는 희미한 확신.


산은 그런 나를 보고 더 늦기 전에 같이 해외생활을 해보자고 말해주었다.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외국에서 살아보자고 할 때마다 자기는 그럴 마음이 없다고 하던 산이었다. 도전하는 성향이 아닌 산은 전적으로 나를 위해 용기를 내주었다. 


어떤 말로도 부족할 만큼 고마웠다.






우리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부부 동반 해외 생활을 결심하면서 단번에 독일을 선택지로 떠올렸다. 독일 국립 대학은 일단 학비가 없고(대학 시설 이용료 명목으로 돈을 내긴 하지만 한국 학비에 비하면 10-20% 정도?), 타 유럽 국가에 비해 치안이 좋다. 22살 때 호기롭게 혼자 떠난 유럽 여행의 첫 도시 파리에서 하루 만에 집시와 소매치기에게 연타로 털린 후 울면서 베를린에 도착했는데, “여기는 소매치기 같은 거 없어요.”라는 한인 민박 사장님의 말을 듣고 그때부터 나에게 독일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코로나 직전에 결혼 1주년 기념으로 떠난 독일 여행에서 산도 독일을 마음에 들어 했었다. 또한 독일의 대학을 경험하고 싶었다. 교수들의 정치 싸움으로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뀐 중구난방 커리큘럼의 희생자였던 우리 학번은 안 그래도 얻을 게 없는 영화과 수업에서 정말로 배운 게 없었다. 대학에서 기대했던 진정한 의미의 학문을 학자들의 나라 독일에서는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공부하기에 최고의 선택지는 미국이겠지만 나에겐 공부 못지 않게 생활이 중요하고, 일단 심신을 좀 달래야 하고, 자본주의 끝판왕 미국에서는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총 맞아 죽으면 어떡해… 총기소유 합법 국가에서 살 수 없어…….


그렇지만 또 살아 보기 전까진 독일이 살기 좋은지 어떤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1년 기한의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선택했다. 일단 가서 살아보자. 20대 내내 그렇게 가고 싶던 워킹 홀리데이. 막차를 타자…!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부부가 동반 출국하기에는 까다로웠다. 독일에 일을 구한 것도 아니고,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코로나 상황. 하지만 독일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다른 나라처럼 인원 제한도 없고 통장 잔고 약 2,000유로와 현지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 그리고 나이만 어리면 된다. 산은 만 30세, 나는 만 29세. 부부가 모두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되면 각자 비자를 받아서 동반 출국이 가능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볼 때는 비자 신청 대사관 예약을 희망일 2주 전에만 해도 된다고 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 퇴사를 하고 여유로운 하루를 즐기다 독일 대사관 홈페이지나 들어가볼까~ 하며 창을 띄웠는데 이달에 가능한 예약이 없었다. 잉? 당황해서 가장 빠른 예약을 찾았더니 12월 29일, 2달 후였다. 그것도 내가 멍때리는 중간에 사라졌다! 당시는 2021년 10월, 독일이 락다운을 풀고 위드 코로나로 정책을 바꾸던 시기였다. 그 동안 떠나지 못하던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황급히 12월 30일의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3주 후의 편도 비행기 티켓 2장을 사버렸다. 


워킹 홀리데이 막차 탑승은 생각했던 것만큼 쉽진 않았다. 독일에서는 만 18-20세의 어린 청소년이나 만 29-30세의 늦깎이 워홀러에게 Motivation Letter를 추가로 요구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젊은 20대 청년에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데, 나이 먹은 너네는 대체 독일에 왜 오려는 거냐, 지금 너네는 취업해서 일할 시기 아니냐? 와서 눌러 앉을 생각이라면 허가 안 해준다. 아마도 이런 입장? A4 용지 한 장으로 독일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목적으로 이 비자를 신청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적으면 좋다는 블로그 글을 참고해서 각자의 Motivation Letter를 완성했다. 






대망의 비자 신청일. 조금 일찍 집을 나서 여유롭게 대사관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출입증을 받았다. 락커에 소지품을 보관하고 서류와 여권을 챙겨 대기하는 공간에서 기다렸다. 우리는 각각 비자 신청을 해야 해서 같은 날에 예약 시간을 따로 잡았다. 독일어 원어민 선생님이자 친구인 Elisabeth가 얼마 전 대사관에 다녀왔는데 #번 창구의 직원이 불친절했다며, 그쪽을 피하라고 알려줬었다. 그러나 언제나 내 인생엔 예상한 빌런보다 한 단계 높은 빌런이 등장하지, 후후. 어김없이 #번 창구의 직원이 나를 호명했다.


마스크를 끼고, 두꺼운 벽을 사이에 두고 비자 신청은 진행되었다. 대사관 직원은 마이크를 켜서 나에게 할 말을 전달했는데, 종종 마이크를 켜는 것을 잊어서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철제로 된 차가운 캐리지가 우리 사이에서 벽을 뚫고 왔다 갔다 했다. 내가 서류를 그곳에 두면, 직원이 캐리지를 움직여 자신의 쪽으로 가져갔다. 직원은 조금 신경질적인 태도와 표정으로 서류를 순서대로 정리해서 놓으라고 했다. 나는 비자를 오늘 꼭 신청해야 한다. 다음 예약은 3개월 후에나 가능하다. 성질을 죽여라, 나여! 최대한 직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노력하면서 시키는 대로 했다. 직원은 나에게 만으로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


나이가 많네요?

    - 나 : ??? 네… ㅎㅎ

    - 대사관 직원 : 결혼도 했네요? 남편은?

    - 나 : 남편도 같이 워킹 홀리데이 비자 신청하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 대사관 직원 : 남편도 같이 간다고요? 남편은 몇 살인데요?

    - 나 : 만 30세요. 딱 마지막이에요.

    - 대사관 직원 : 나이가 많은데 왜 워킹 홀리데이를 가요? 가서 일할 거예요? 이거 일할 수 있는 비자

                         아니에요. 일하면 불법이에요.

    - 나 : 아… 가서 취업을 할 건 아니고 옛날부터 해외에서 경험을 하고 싶었는데 못 했어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가려고요.

    - 대사관 직원 : 지금 코로나 때문에 가도 아무 것도 못 해요. 왜 요즘 이렇게 부부가 같이 신청을 하지? 

                        가서 일하면 안 돼요. 가도 여행도 못 다녀요.

    - 나 : 그래도 시간이 더 지나면 신청을 못 하니까 지금 가고 싶어서요…^^ 많은 걸 못 해도 한국에 있는                  보다는 나을 것 같아요.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 올리며 나를 보던 직원은 신청서에 주소를 잘못 썼다며 “이렇게 쓰면 안돼요.” 하며 차가운 캐리지에 해당 페이지를 담아 나에게로 밀었다. 작은 바퀴 소리가 서걱거렸다. 몇 가지 수정 사항을 지시하고, 캐리지가 몇 번 더 오갔다. 지문을 찍는 과정을 마치고 일주일 후에 결과를 확인하러 오라고 말한 그녀는 내게 자신이 15분 후부터 다른 일을 해야 한다며 남편을 부르라고 했다. 나에게 설명해줬던 부분을 남편에게 직접 설명해서 빨리 처리할 수 있게 가져오라는 말을 덧붙이며.


다급히 종종 걸음으로 산에게 가서 수정 사항을 알려주고, “가서 뭐 할 거냐고 물어보면 무조건 그냥 경험한다고 해…”라며 노파심에 산의 귀에 대고 랩을 했다.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해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Yo. 명심해야 해, man. 산을 직원에게 보내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뭔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돌아가서 산의 서류를 정리해줬다. 다행히 산에게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빠르게 신청이 마무리 되었다. 


식은땀으로 등이 젖었다. 분명히 대사관 방문 후기에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왜 내게는 비자 신청이 이렇게도 힘겨웠던 것인가! 비자 안 주면 어떡하지? 내가 Motivation Letter에 뭐라고 썼지? 아니, 만 30세까지 갈 수 있는게 규정인데 나이가 많다고? 그럴 거면 만 28세까지 갈 수 있다고 하지, 왜 저래!!! 


분노와 후련함이 뒤섞인 채로 대사관에서 나와 서울역 앞을 걸었다. 



일주일 후, 우리의 여권엔 1년 기한의 EU 체류 비자가 붙었고 우리는 3주 후 독일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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