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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 Aug 03. 2024

평범한 아침을 산산조각 낸 한 통의 전화

엄마의 도박 사실을 알게 되다

새벽 다섯 시가 되기 몇 분 전이었다. 아니, 네 시가 좀 넘었을 때였나. 은은하게 시작해 점점 거세지는 스마트워치의 진동으로 잠에서 깼다. 까페에 오픈조로 출근하기 위해 전날 맞춰 놓은 알람이었다. 수면 상태에서는 벗어났지만 몸을 일으키기가 싫었다. 내가 뒤척이자 옆에서 자고 있던 남편도 눈을 떴다. 그의 품에 폭 안겨 가기 싫다고 징징댔다. 이불 밖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내게 그는 깜깜한 새벽길을 동행해서 본인은 운동하러 가겠다는 회유책을 제시했다. 그의 다정한 격려와 약간의 강제적 손길의 도움을 받아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오히려 조금 더 기분 좋은, 말랑한 아침이었다. 


거실로 나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어 새벽에 온 메시지 알림을 확인했다. 독일보다 아침이 빨리 찾아오는 한국에서의 연락은 종종 내가 잠에 빠져 있을 때 도착해 일어날 때쯤이면 쌓여 있는 경우가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잠금 화면 상태로 푸시 알림만 슥 훑어보고 곧장 씻으러 가려는데 언니에게 온 메시지를 발견했다.


‘일어나면 바로 전화해라.’

‘급한 일이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런 류의 문자를 받으면 가족과 떨어져 해외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이전에 비슷한 연락을 받았을 때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갑자기 당일에 비행기를 타야 했다. 무슨 일일까. 할머니 일일까? 아니면 엄마나 아빠가 아픈가? 


남편을 거실에 남겨두고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는 캐나다에 살고 있다. 캐나다는 지금 몇 시더라, 생각하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무슨 일인데.”

“어... 일어났어?”

“어. 뭔데, 뭐가 급한 일인데?”

“그게... 아까 아빠랑 통화했는데, 우리 집에 빚이 갑자기 엄청 늘어났대.”

“무슨 빚? 왜?”

“몰라, 알면 놀랄 거라고 제대로 말을 안 해주는데 좀 심각한 것 같다.”


그때, 어떤 생각이 머리를 내리쳤다. 이미 위험 신호를 감지했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일. 설마. 설마 그건 아니겠지.


“엄마가 투자를 하다가 빚이 생겼다는데.”





몇 달 전, 엄마에게 장문의 메시지가 왔었다. 카드빚 500만 원을 당장 다음 주 월요일까지 갚아야 하는데 돈을 빌려줄 수 있겠냐고. 아니면 신용불량자가 된다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 카드빚이 도대체, 어쩌다, 왜 그렇게 많이 생겼냐고 캐물었다. 주식을 했는데 적은 월급을 쪼개 적금으로 모았던 2,000만 원을 몽땅 날려버려서 그 손실을 메꾸기 위해 대출을 받아 선물옵션에 투자를 했다고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이정재가 인생을 말아먹고 목숨을 건 ‘오징어 게임’을 하러 떠나게 했던 바로 그 선물옵션. 그렇게 위험한 투자를 겁도 없이, 그것도 대출을 받아서 하면 어떡하냐고 한참을 다그치다가 만 원 한 장도 허투루 못 쓰는 엄마가 열심히 모은 돈을 잃어버린 마음이 어떨까, 싶어서 우는 엄마를 달랬다. 그리고 다시는 투자에 손도 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통장에 있는 현금을 털어 250만 원을 보내줬다.


매달 50만 원씩 갚겠다던 엄마는 월급날이 지나도 나에게 돈을 보내지 않았고, 그다음 달에는 30만 원씩 갚아도 되냐고 그 액수를 줄이더니, 그마저도 나머지 250만 원을 빌린 친구에게 돈을 먼저 갚아야 한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 빚의 전부인 줄 알았던 그 500만 원은, 겨우 한 달 치 신용카드 청구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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