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 Oct 12. 2024

다시, 오늘도 안녕

다시, 베를린


베를린에 돌아온 지 일곱 달이 지났다. 


엄마는 몇 달간 병원에 다녔다. 아빠가 아침저녁으로 엄마의 약을 챙겨 주었다. 엄마를 절대 보려 하지 않던 할머니는 눈앞에 나타난 엄마에게 며칠 동안 폭언을 퍼부었고, 고모들은 아빠에게 이혼을 종용했다. 몇십 년을 가족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엄마에게 등을 돌렸다. 


내가 떠난 후에도 엄마는 한동안 해외 선물 투자 방법을 계속 강구했다. 나는 며칠에 한 번씩 엄마의 아이클라우드와 카카오톡을 확인하며 관련 정보들을 지웠다. 그리고 엄마에게 최대한 감정을 담지 않은 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다. 이 방법은 잘못되었다고. 우리는 앞으로 잘 지낼 수 있다고. 


신용회복위원회의 상담을 받은 엄마는 다행히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대부업체의 대출과 햇살론을 제외한 카드빚의 이율을 절반 가까이 줄이고, 약 월 50만원씩 10년간 상환하여 채무를 청산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동시에 10년 동안의 신용카드 사용 및 발급이 금지되었다. 엄마가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고, 신용카드 사용을 막으면서 스스로의 채무를 책임질 수 있게 된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었다. 


가장 걱정했던 대부업체의 주택담보대출은 몇 달이 지나도 집이 팔리지 않는 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게 아빠가 할머니 집을 담보로 조금 더 낮은 이율의 추가 대출을 받아 상환하게 되었다. 이 또한 엄마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었지만, 엄마가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빠는 엄마를 도울 수밖에 없었고 그 방법이 아빠의 손해를 줄이는 길이었다. 그 사이에 아빠의 일을 알게 된 오래된 친구들이 마음을 모아 아빠가 지게 된 빚의 일부를 상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중 한 분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대동해 대부업체의 채무도 문제없이 상환할 수 있었다. 


엄마는 처음에 신경정신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잘 먹으려 하지 않았다. 현실과 망상의 세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엄마는 회피하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오자 점점 스스로 약을 찾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불안감을 제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점점 치료에 협조적으로 변해갔다. 


엄마가 혼자가 될 것을 걱정해 이모들에게 엄마를 부탁했다. 이모들은 감사하게도 엄마를 챙겨주었다. 아빠도 이전과 달리 엄마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언니도 나도, 엄마에게 더 자주 연락하며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애썼다. 



시간은 다시 많은 것을 되돌려 놓았다. 할머니와 친가 식구들은 애쓰는 엄마를 보며 다시 마음의 문을 열었다. 엄마는 그동안의 일이 사기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엄마는 다시 매일 운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일을 한다. 그리고 아빠는 얼마 전, 아픈 발의 수술을 받았다.


점차, 서서히, 나는 엄마와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자주 내 마음속 길을 잃었다. 내 핸드폰에 연결해 둔, 엄마의 통장 입출금 내역 알림이 울릴 때마다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견디는 일이면 충분히 벅찼다. 





짧고도 긴, 일곱 달이었다. 그 시간 사이에 되찾은 일상의 소중함은 언젠가부터 다시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던 마음은 다시 많은 사소한 걸 바라고 있다.



불행은 시간으로 희미해지지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언제 다시 선명해질지 모르는 불안함에 잠식되지 않도록 나는 오늘의 나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한다. 그건 종종 혼자서도 가능하고, 누군가의 손길로 완성되기도 한다.



엄마를 외롭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다시 흐려지고,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 엄마를 생각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엄마와의 통화를 미루고, 또 미룬다. 그저 엄마가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별일 없는 하루 중에 많이 웃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 안녕하다. 

이전 20화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