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든든한 동생들이 많아진 나는 행복한 여자
"언니 이야기 들으니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야기 듣는 것 같아요~"
같이 대화를 나누던 윤영이 하는 소리다.
"그게 무슨 뜻이야?"
뜬금없는 백설공주 이야기에 무슨 뜻으로 그녀가 말한 건지 궁금했다
"언니를 챙기는 일곱 난쟁이 남동생들과 함께하는 백설공주 라나 같다고요"
"그런가? 하하하"
그녀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최근에 듬직한 동생들이 많이 생겼다. 친동생 하나를 잃고 얻게 된 가족 같은 동생들이다. 잃어버린 나의 동생은 어린 시절 가족이 깨어지면서 생존을 위해 내 몸 하나 겨우 건사하던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그냥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서로의 가슴에 상처만 안기고 안고 그냥 그렇게 되었다.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관심도 없는 현대의 각자도생사회에서 각자도생 가족이 되었다. 아버지는 세 번째 결혼한 얼굴도 모르는 여자와 대구 어디에서 살고 있고, 그리고 하나뿐인 동생은 서울 어디에서 살고 있다. 생물학적 어머니는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더 알 수가 없다. 많지도 않은 가족이지만 서로 단절되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가족, 혈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가슴이 감정 없는 목석이 되는 것 같다. 감정의 물기 한 방울 없이 메말라 버린다. 그러다 평소 좋아하던 음악덕에 취미가 같은 지금의 동생들을 알게 되었다. 동생이라고 하기에는 다들 마흔 넘어서 존댓말을 해야 할 것 같은 성인들이지만 좋아하는 취미영역 내에서 그들은 아직 십 대 청년들과 다들 바 없다. 그런 모임에 여자는 나 혼자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혼자뿐인 나를 츤데레처럼 챙긴다. 나이가 마흔 중반을 넘긴 그들이 나를 '누나, 누라' 하고 부르며 다가온다. 평소 반말을 할 줄 모르는 나도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그래, 동혁아" 하고 대답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나 락과 헤비메탈 광팬들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러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뿐만 아니라 부산으로 서울로 함께 돌아다니곤 하는데 지난주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서울에서 블랙홀 공연이 있었다. 새해 첫 공연이라 지난해와는 다른 레퍼토리로 구성되어 있었고 공연장에 참가한 블랙홀 팬들은 새로운 곡들이 소개가 될 때마다 신나게 따라 부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었다. 공연장 안은 금방 열기로 가득 찼고 앞머리는 땀에 젖어 축축해졌다.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때마침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동생들 중 평소 눈 보기 힘든 영덕에서 올라온 수진이네 아이들은 신난 강아지 마냥 이리 저리로 뛰어다녔다. 아이들은 나는 동생들과 함께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그날은 공연 마치고 용인에 있는 그의 집에서 애프터파티를 하기로 한 날이다. 공연에 오기 전 이미 장보기를 마친 상태이고 더 눈이 쌓이기 전에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용인집 주소 카톡으로 보낼게, 눈이 많이 오니까 운전 조심하고~"
다음날 각자의 집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의 앞유리에 벚꽃 같은 흰 눈꽃이 부딪혀 주변으로 흐트러진다.
“형님,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요?”
목소리 큰 동혁이가 우리가 장본 것을 보고는 놀라며 하는 소리다.
“식구가 이렇게 많은데 이 정도는 해야지”
그가 웃으며 대답한다.
“암튼 잘 먹겠습니다.”
동혁이네 가족들, 수진이네 가족들 그리고 안양에서 온 동생, 컴퓨터 엔지니어인 광진이 등 모두가 한 테이블에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나는 동혁이에게 물었다.
“동혁이가 보기에 에이블이 어떤 것 같아? 나에 대한 마음이 진심인 거 같아?”
하고 물었다.
“잘은 몰라도 오십이 넘은 나이에 이렇게까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흔치는 않아요. 그리고 형님은 어느 곳에 있던 항상 누님만 바라보고 있어요. 절대 다른 곳으로 한눈팔지를 않죠. 지금까지 본 것으로만 생각해 보면 누나를 진심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고 싶은 마음에 과대평가해서 그를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동생을 통해 확인받고 싶었나 보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새벽 4시, 5시를 넘어가니 마지막까지 안 자고 있던 동혁과 수진이 마저 방으로 가서 눕는다. 한 집에서 같이 먹고 같이 자니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애플 빠인 동혁은 사용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십 년 넘게 애플시리즈를 쓰고 있는 나에게 사용법도 가르쳐주고 맥북, 아이패드 쓰다가 모르면 사무실까지 와서 가르쳐주고 한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처럼 남 같은 친동생보다 가까이에서 이렇게 정 붙이고 만날 수 있는 동생이 정말 내 동생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나 오늘은 그런 내 동생들이 모두 한 집에 같이 있다. 맘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같이 먹고 같이 자면 가족이다. 각자 어떤 삶을 살았든 간에 인생의 수레바퀴가 돌고 돌아 이렇게 만나면 한 가족이 된다.
그렇게 일곱 난쟁이가 라나 옆으로 모여들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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