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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a Feb 06. 2024

잃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깨달음은 찰라이다.



그날은 그를 보러 올라간 늦은 여름 일요일이었다.



아침을 같이 준비하고 먹으면서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이야기 나누다가 스킨케어 숍을 예약했다. 늦게 만난 우리는 남은 삶 최대한 젊고 건강하게 살기로 다짐하면서 2년 차 준헬창의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따라서 그는 웨이트도 시작하였고 시간 되면 스킨케어도 같이 받고 있다.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수한 아저씨였는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베이지색 면티와 면바지 위에 연한 비둘기색 면코트를 입은 평범한 모습에서 지금은 라이더들이 신을 것 같은 앵클부츠에 가죽쟈켓을 걸치고 운동가방을 요즘 헬창이처럼 어깨에 툭 걸친 것이 뒤에서 보면 영락없는 젊은이이다.


앞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뒤에서 보니 완전 청년 같아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래요? 멋진 당신에게 맞추려면 이 정도는 꾸며야죠"

라고하고 쑥스러운 듯이 웃는다.

평소에도 진에 스틸레토 구두를 즐겨 신고 선글라스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랑 같이 걸으면 이제 그가 나 같기도 하고 내가 그 같기도 하다.


간단하게 준비를 하고 숍에 도착해서는 간밤에 늦게 잠이 들어서인지 피부관리사의 리드미컬한 손놀림에 기분이 좋아져서 마사지를 받기 시작하자마자 둘 다 잠이 들었다. 관리사의 다 되었다는 말과 함께 달콤한 90분간의 수면에서 깨어났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 그가 잠깐 비틀거리는 것 같았는데 '아직 잠이 덜 깨였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 그가 피곤한지 얼굴을 찡그렸다 폈다를 반복한다.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면서 "피곤해요?"

하고 말을 건넸다

"네,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어요."  

그리고는 신호를 보고 좌회전을 하던 그때였다.


그가 갑자기 좌회전 차선인 1차선을 따라 궤적을 그리며 운전하지 않고 3차선까지 가로지르면서 좌회전을 하였다. 놀란 나는 헉! 하며 외마디 소리를 질렀고 차는 4차선에 주차해 놓은 화물차의 모서리를 오른쪽 백미러로 치면서 급정지하였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놀란 나는

"오른쪽에 화물차 주차한 것 못 봤어요?!"

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는 내가 하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 표정과 함께 내가 목소리를 높인 것에 대해 화가 난듯한 표정을 지었다.

"못 봤냐고요?"

제차 물으니 무슨 소리냐고 다시 묻는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평소와 다른 그의 태도에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내가 운전할 테니까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그도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서였을까? 얼른 운전석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운전하고 가는 동안 옆에서 계속 이상하다 이상하다를 반복하고 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하고 물으니 설명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손을 쥐락 펴락을 계속하고 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도 못하면서 발음도 흘리면서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갈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119에 전화를 했다. 가까운 병원을 알려줬다. 그러나 처음 들어보는 병원이라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친한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으니 용인 세브란스를 알려주었고 병원은 15분 이동거리 내 있었다.


병원에 주차를 하고 그를 부축이며 안으로 들어가니 간호사가 의사를 급히 데려온다. 의사는 몇 마디 묻더니 바로 CT촬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촬영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고 의사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급성 뇌경색입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건강함이 넘치는 사람인데 뇌경색이라니, 의사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내가 무엇을 들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있으니

"확실한 뇌경색입니다. 들어올 때 말이 어눌해서 의심은 했지만 너무 젊어서 혹시나 하고 봤는데 뇌경색 맞고요 당장 조치를 해야 합니다. 증상이 나타난 지 얼마나 되었죠? 보호자 되시나요?"


응급실 침대에 누어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옆에 앉아 있으니 이제는 손도 잘 움직이지 못하는 그가 내 손을 힘없이 잡으며 말한다.

"미, 미이, 미아안해요, 내, 내가 미, 미안해요"

덩치도 큰 사람이 작은 병실 침대에 누어서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이제 어떡하지? 당신 없이 나 혼자 어떡하지? 당신 없는 그 집에 나 혼자 어떻게 들어가지"






그렇게 그는 수술실로 들어가고 응급실과 집중치료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거의 3주를 병원에 있었다. 지난 11개월 동안 매주 만나던 우리의 장정이 그의 입원과 함께 강제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통화도 안되고 보호자도 아닌 나는 그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도 할 수 없었어 답답함에 속을 끓던 2주가 지났다. 드디어 그는 집중치료실로 옮겨졌고 핸드폰을 건네어받을 수 있었다.


"당신아~"

2주 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다.   

"아~ 이제 좀 괜찮아요?'

반가움에 눈물이 울컥 올라왔다.


그는 여전히 말을 잘 못했다. 뇌의 좌반구 하측 전두엽에 위치한 브로카 영역을 다친 그는 남의 말을 이해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말이 나오고 단어를 잃어버려 표현하는데 문제가 있는 상태이다. 전화기 넘어 말을 하고자 애쓰는 그가 느껴진다. 대화를 하기는 어려웠지만 전화기 넘어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으로 그 간의 초조함과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입원해 있는 와중에도 퇴원하겠다고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병원에 모든 것을 맡기고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치료에 방해가 되는 거친 행동으로 인해 그는 계속 수면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못 참아하는 걸 잘 아는 나로서는 그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은지 6개월째가 되었다. 아픈 와중에도 사무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서 퇴원해 외래치료를 받다가 수술 후 3개월째 되는 날 담당의사의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비록 보호자는 아니지만 의사의 말을 다 이해하지도 그리고 들은 것을 다 전달해주지도 못하는 그이기에 치료경과를 들으러 같이 갔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실기하면 평생 회복이 안된다는 하는데 회사일 때문에 외래진료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시 입원을 결정했다. 그렇게 두 번째 강제 이별을 한 달간 하였고 얼마 전에 다시 퇴원을 했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의 그는 너무 진지해서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가 아프다는 것이 알려지자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평생 아픈 사람 뒷바라지 하며 살 것은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어떤 친구는 그가 매우 이기적이라고 했다. 자기 같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고생하는 거 보는 게 죄책감이 들어서 먼저 헤어지자고 했을 거라고 했다. 그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새로운 인생을 찾아보겠다고 독립까지 한 결과가 평생 병간호로 이어지는 것은 나도 싫다.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는 그가 이기적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맘이 말한다. 아직은 그와 헤어지고 싶지가 않다고. 남들은 쉽게 정리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와 더 있고 싶다.


그를 사랑하는지 몰랐다. 지금도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알았다. 어리석은 사람은 잃어야 무엇을 잃었는지 보이는 모양이다. 건강을 자만하던 그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건강은 자신해서도 자만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이제 몸에 좋은 것만 먹자. 음식 탐하지도 말고'

" 그래 그러자"

"음~ 그리고 운동도 열심히 하자. 커플 바디프로필 찍어야지"

"하하하, 그래 그러자"




잃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지금 찾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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